우리가 모르는 굉장히 어려운 기술로 나날이 복잡해지는 컴퓨터의 근본적인 작동원리는 의외로 단순하다.
이진법으로 연산처리를 하는 CPU에겐 0과 1이라는 두 숫자만 있어서 Yes나 No라는 두 가지 논리적 판단기준으로 모든 것을 엄청난 속도로 처리하는 것이다.
이는 또한 인간의 몸에게 각종 명령을 내리는 뇌에서 분비하는 호르몬의 체계와도 같다. 의학용어로 아고니스트(Agonist)와 안타고니스트(Antagonist)라는 것이 있는데, 전자가 인체에 작용하는 각종 호르몬이나 신경의 전달물질과 함께 작용하여 이를 더욱 강화하는(Yes) 것이라면, 후자는 이를 억제하는(No)하는 역할을 한다. 즉, 우리가 아플 때 뇌가 반응하여 명령하는 것은 때론 이로울 수도 있고 때론 해로울 수도 있기 때문에, 이를 조절하여 이로운 건 더욱 좋게 하고, 해로운 건 막아주는 작용을 하는 것이 이런 범주의 약이다.

대표적인 안타고니스트로 잘 알려진 것이 항히스타민제이다. 감기에 걸려 콧물이 나는 것은 히스타민이라는 호르몬의 명령에 의해 항체가 형성되어 병균과 싸우는 과정에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생활에 불편을 초래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참지를 못한다. 따라서 항히스타민제를 투여해서 히스타민 호르몬을 억제하여 빨리 콧물을 멈추게 하는 것이니 그리 좋은 것은 아니라 생각된다.
장황하게 컴퓨터와 약의 작용방법에 대해 설명한 것은 이 세상이 모두 그런 식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관계도 어쩌면 이(利)와 해(害)라는 두 가지 이진법에 따라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인간관계에 있어서 이(利)와 해(害)라는 것은 단순히 꼭 금전적인 것만은 아니다. 사랑과 우정이 될 수도 있고, 미래의 비젼이 될 수도 있으며, 고객의 가치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사람들이 행동하는 근본적인 원인과 이유를 이해(利害)라는 한 단어로 단순하게 이해(理解)해 보면, 사람들을 움직이는 방법도 간단한 모식처럼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직원이 나를 따르게 강요하거나, 고객이 내 제품을 구입하도록 강요할 필요가 없다. 그저 그들의 입장에서 원하는 이(利)를 주면 따라 올 것이요,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 해(害)를 주면 떠날 것이다.

마케팅에서는 소비자의 마음을 바꾸고 그 마인드에 브랜드를 자리잡게 하는 일련의 행동들을 포지셔닝(Positioning)이라고 한다. 즉 소비자의 마음이 원하는 이(利)를 찾아 내어 그들의 마인드에 이(利)에 부합되는 브랜드 가치를 심어주는 것이다.
공저자인 잭 트라우트가 2008년 한국에 방문했을 때,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제품이나 브랜드 아이디어가 '못'이라면 차별화 마케팅은 '망치'입니다. 못이 아무리 좋아도 고객의 마음에 망치로 밀어 넣지 못하면 아무 소용 없죠. 마음 속에, 뇌리 속에 파고들려면 메시지를 날카롭게 갈아야 합니다. 날카로우려면 애매하거나 불필요한 것은 빼고 단순해야 합니다. 차별화해야 합니다."
고객의 마음 속에 날카로운 못을 박아 빠지지 않게 강하게 자리잡도록 하는 마케팅의 차별화, 포지셔닝도 결국 소비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마인드를 조작하는 행위이다. 잭트라우트와 알리스의 명저 <22가지 마케팅불변의 법칙>을 봐도 책의 초반에 여러 번 반복하며 중요하게 나오는 말은 계속 소비자의 '인식'에 대한 내용이다.
“더 좋은 제품을 출시하는 것 보다는 맨 처음으로 출시하는 것이 낫다(1. 선도자의 법칙, The Law of Leadership). 여기서 맨 처음이란 의미는 시장에 먼저 들어가는 것보다 고객의 기억 속에 맨 먼저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3. 기억의 법칙, The Law of Mind). 왜냐하면 마케팅은 제품의 싸움이 아니라, 인식의 싸움이기 때문이다(4. 인식의 법칙, The Law of Perception). 그러므로 마케팅에 있어서 가장 강력한 개념은 잠재고객 기억 속에 한 단어를 깊게 심는 것이다(5. 집중의 법칙, The Law of Focus).”

이 책이 나온 이래로 수 십 년이 지난 지금, 마케팅이 인식의 싸움이라는 말은 마케팅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보편화된 진리처럼 되었지만, 중요한 건 그 쉬운 것을 누구나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여전히 너무도 당연하게도 고객 중심이 아닌 제품 위주, 기술 위주, 기업의 내부 환경 위주로 마케팅을 하고 있으면서, 그런 사실조차 깨우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말로는 고객 감동에서 고객 졸도까지를 외치지만, 통상적인 탁상머리 행정 식의 기업경영은 고객의 입장에서 보면 이(利)보다 해(害)를 주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이 고객 관점으로 전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말로는 고객 감동에서 고객 졸도까지를 외치지만, 통상적인 탁상머리 행정 식의 기업경영은 고객의 입장에서 보면 이(利)보다 해(害)를 주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기업이 고객 관점으로 전환하는 일은 쓰디 쓴 고통의 혁신이 수반되는 어려운 일이겠지만,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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