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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과 경력의 차이는 숙련도이다. 업무의 전문성, 조직 내의 친화도, 인간관계의 능숙함 등 전반적인 모든 것에는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리 작은 조직이라도 속해있는 사람들에겐 우리의 문화이고 새로 들어온 누군가에게는 텃세라 불리는 '우리만의 규칙'이 존재한다. 규칙이 얼마나 상식적이고 공정하냐에 따라 조직은 한없이 좋아지기도 하고 한없이 비정상적이게 변하기도 한다. 회사 안에서 자신의 능력보다 덜 인정받고 있다거나 잘 나간다고 느끼게 되는 이유는 '우리만의 규칙'에 얼마나 부합하고 있는지에 달려있다. 

 

모든 신입사원들은 대한민국에서 12년 동안의 정규교육과 4~6년 동안 전문교육을 마친 어른들이지만 '도화지'가 되기를 요구받는다. 새로운 규칙을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무언의 압력. 변화가 오지만 알아차리지 못한 채 서서히 그 회사의 일원이 돼간다. 마지막 학교를 졸업하며 나름 선임 선배였지만 신입사원이 되면 다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이가 된다. 사회인으로의 신분상승을 했음에도 학생 때보다 못한 일을 하게 된다. 몇 년만 버티면 후배들이 그 자리를 메꿔주지만 한동안은 이러려고 그 많은 돈 주고 대학교를 졸업했는지 상실감이 밀려온다. 새로운 세상에 발을 딛으며 더 나아갈 것이라 생각하지만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더 많다. 대학보다 더 좁은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 회사에 묶인 다는 것은 자신의 시간의 대부분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자신의 꿈을 회사에서 이룰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이 꺼지고 나서야 현실을 인지하게 된다. 그렇게 수동적인 시간이 쌓이는 것이 경력이다. 

 

경력으로 들어온 유경험자들은 눈치껏 돋보이거나 적당히 묻히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나의 옛 회사가 업계의 종착역이라 불렸던 적이 있었다. 더 이상 옮겨갈 곳이 없는 최종 목적지랄까. 시장의 분위기가 좋았을 때 (선배들이 말하는 좋은 시절이 바로 이때이다.) 회사는 덩치를 키우고 싶었다. 그래서  작은 회사 신입으로 출발해서 중규모를 거친 사람들을 대거 경력사원으로 뽑았다. 업계의 열악한 근무조건과 연봉은 대형회사로의 이직을 부추겼고 가장 큰 요소는 월급이었다. 그 종착역이 끝까지 호황을 누릴 거라 예상하고 더 이상의 고민은 없을 꺼라 생각해 대부분은 만족하였고 회사의 이직률은 매우 낮았다. 오히려 신입으로 시작한 사람들이 나가는 경우가 더 많았다. 다만 그 경력직을 뽑는 인사 관련 직원들은 전문직인 업계의 생리를 잘 모르기에 이력서의 학력과 지인의 추천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전문성이 결여된 시스템은 모든 것은 사람과의 관계라는 것을 강조한다. 누군가의 적극적인 추천은 능력치 때문이 아니다. 학연, 지연이다. 그리고 지금도 이어져오고 있다. 넓다고 하지만 다섯 사람 정도만 거쳐도 업계의 평판을 알 수 있는 좁은 바닥이다. 누가 정직하게 혹은 냉정하게 업무 능력을 평가하겠는가. 그러다 보니 경력직, 신입 가리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비슷하게 현실에 안주하며 끝까지 회사와 함께 늙어가기를 소망하게 된다. 잘한다고 더 나을 것도 없고 못한다고 냉정하게 자르지도 않았던 시기였다. 물론 알게 모르게 신입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승진이나 부서 배치에 이득을 볼 때도 있지만 모두에게 해당되는 건 아니었고 때로는 엄청난 연줄이 숨겨진 사람들이 급부상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이 계속되면 사람들은 정체되기 시작한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것이다. 그 우물 안에서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고인물이 썩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힘없고 능력 없는 치들이 쫓겨나기 시작한다. 내가 있던 우물도 썩기 시작했다. 물론 안에 있을 때는 잘 몰랐다. 나 역시도 그 우물에 살던 개구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나와서야 깨닫게 된다. 아주 절실하게.

 

경력직이 되어 다시 시작한다.

 

경력직 채용 공고를 찾아보기 시작하고 있다. 다시 고용되어 다른 회사로 돌아가려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일을 할 것인지도 고민이다. 결정은 하지 않고 과연 돌아갈 곳이 있는지 간만 보고 있다. 내 경력이 아무 곳이나 골라서 들어갈 정도인지에 대한 검증은 부딪혀 봐야 알 수 있을 거다. 과연 대기업 9년의 경력을 인력시장에서 어떻게 평가될까. 지난해부터 업계 인력시장은 호황이라고 하는데 문제는 직업의 질이다.  백수가 되고 다시 업계를 바라보니 이전의 내 모습(일찍 회사를 들어가 경력단절 없이, 승진 누락 없이, 30대 중반이 되기 전에 희망퇴직까지)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군대와 육아로 인해 남들은 보통 쉬는 3,4년을 단축했으니 아무래도 선택의 폭이 넓어지겠다는 기대감과 앞으로 내게 놓인 육아의 시간과 언젠가는 찾아올 노년기를 생각하면 별반 다를 게 없을 것도 같다. 기왕 쉬는 김에 능력치를 높일 수 있는 자격증을 따거나 기술을 배워볼까 고민하게 된다. 끓임 없이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밀려오는데  입사를 위해 스펙을 쌓던 지난날이 오버랩된다.  어쨌든 직장을 다시 구한 다는 것은 신입이든 경력이든 결국 경쟁이다. 다시 직장인이 되려면 그 경쟁의 우위에 서야 하고 지금은 스펙을 더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다시 한번 9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나는 변화가 없음을 깨닫는다. 진취적으로 다른 일을 해보겠다고 박차고 나온 것은 아니지만 한 순간에 삶이 변하기를 기대했다.  회사를 나옴으로 다른 인생을 시작하게 될 거라는 기대가 무너졌다. 9년 전 나의 도화지에 깨끗했지만 지금은 그동안의 경험이 새겨져 있다. 지우고 다시 시작하려면 다시 하얀 도화지가 되어야 한다. 그냥 덧대어 그리기 원하면 비슷한 유형의 이름만 다른 고만고만한 회사를 선택하면 된다. 희망퇴직을 선택하며 나는 하얀 도화지가 되겠다고 했으나 이미 그려놓은 밑그림을 지우기가 쉽지 않다.

 

더 나은 직업을 찾겠다는 욕심이 생긴다. 9년 차 직장인의 한계인가. 박차고 나왔지만 내가 그리는 내일 역시 지난날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랜 시간을 보냈던 지난날과는 다른 꿈을 꾸고 싶다. 그런데 꿈과 다르게 이 정도 경력이면 어디서든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전제 조건을 깔고 실패나 좌절이 없는 길만을 찾고 있다. 꿈을 꾸면서도 지난날의 기득권을 움켜쥐고 더 안정적인 곳을 찾고 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면서도 실제 내 삶에 한번 올라섰던 위치에서 나아가고 싶어 한다. 지난 회사가 갑의 위치에 있기에 스스로가 갑으로 여겨지는 삶에 익숙해진 것일까.  선배들이 이른바 '을'이었던 협력업체 실장 혹은 소장들에게 소리지르기를 예사로 하던 때가 있었다. 팀장 격인 임원들이 협력업체와의 계약을 좌지우지했던 시절에 지위는 곧 권력이었고 팀장의 권력은 소장에게로, 다시 팀원에게로 전해졌다. 입사한 지 몇 달 되지 않아 사원들은 협력업체 실장들에게 요구를 쉽게 했다. '언제까지 해주세요.'라는 단순한 말은 '나는 퇴근하지만 결과물을 보고 싶으니 '야근하세요'로 번역할 수 있다. 아직까지 나는 '을' 이 되고 싶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윽박지르기가 불가능해졌던 때는 대기업으로 윤리강령이 강화되고 나서부터 였다. 그 전까지만 해도 덩치만 컸지 주먹구구식이었던 회계가 투명해지자 더 이상 권력 휘두르기가 표면에서는 행해질 수 없었다. 모든 것은 입찰을 거쳤고 더 이상 갑질이 먹혀들지 않았다. 좋은 현상이고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지만 회사 내의 모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일하기가 힘들어졌고 협력업체의 질이 낮아졌으며 업무가 가중되었다며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모두는 발주처 앞에서 한없이 '을'이었으면서도  스스로의 행동을 들여보지 않았다. 지극히 평범하고 착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회사의 타이틀을 달고 나면 모두가 지위에 맞는 행동이라 생각하고 상식을 벗어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나 역시도 나의 갑질이 무엇인지 몰랐으니까. 대기업에서 일한 다는 것은 모든 것에서 우위에 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봉에서도 지위에서도 프로젝트의 먹이사슬에서도.

 

그래서 나는 지난 회사의 타이틀을 떼 버리고 싶으면서도 한쪽으로는 붙잡게 된다. 좀 더 쉽게 좀 더 많이 좀 더 편하게 모든 것을 잡고 싶다. 욕심은 끝이 없다. 하루에도 몇 번씩 어디선가 다시 일하는 나를 그려보면 더 나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 결국은 또 다른 대기업을 찾는 것 같아 아찔해진다. 현실과 동떨어진 생각을 하다 보니 그려지는 모습에도 한계가 생기나 보다. 내가 찾는 미래는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내가 만들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 당장 결론을 내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안심이 된다. 

 

분명한 것은 지금도 나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중이라는 거다. 다만 그게 작은 우물에서 더 큰 우물로 옮겨가는 건 아니여야 한다. 나의 경력에 우쭐할 이유도 없고 스스로를 낮출 필요도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사원이 아니지 않은가. 오로지 안정감과 연봉에 연연해하지도 않아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완벽한 직장이 아니더라도 기존의 회사와는 다른 일을 경험해보고 싶다. 

 

회사를 그만둔다는 것은 어렵다. 그보다 어려운 것은 당연히 내가 지난번 직장보다 더 좋은 곳을 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버리는 것이다.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과 두려움을 껴안고도 유연해질 수 있는 강인함이 필요하다. 다행인 것은 지금 이 경험 역시 나에게 또 다른 경력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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