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이 중시되던 소비재에서
상대적으로 마케팅이나 브랜드의 개념이 약한 B2B산업군으로 이직해보니,
마케팅은 더 이상 사업의 중심이 아니었다.
소비재에서는 누구나 선망하던 부서였으나 여기에서는 영업도 아니고 기술도 아닌 애매모호한 포지션이었고,
다들 가기를 꺼리는 눈치였다.
소비재는 소비자의 구매주기가 짧고 경쟁이 치열하다.
타 산업군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기 때문에 우후죽순처럼 신제품이 쏟아져 나온다.
자연스럽게 경쟁에서 살아남고 소비자의 마음을 끌기 위해
소비자의 생활에 밀접한 신상품 개발이나 커뮤니케이션 등의 마케팅 활동이 발달할 수 밖에 없다.
모든 산업처럼 소비재 또한 R&D능력이 베이스가 되어야 하지만,
이 분야의 리더들이 기술만이 전부가 아님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하지만 모든 산업분야, 모든 회사에서 마케팅을 그렇게 높이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기술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소비자가 ‘더 좋은’ 제품을 알아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회사가 더 많다.
오래 전부터 1위를 지켜온 회사, 엔지니어 백그라운드를 지닌 CEO일수록 더 그러한 경향을 보인다.
그들은 소비자들은 제품에 대해 잘 모르니 전문 유통에서 권하는 대로 살 것이라고 생각하며,
품질이 우수한 제품을 만들면 저절로 알아줄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경우의 마케팅이란 유통에 제품을 잘 소개하고,
친분을 유지하며 그들이 원하는 것을 지원해주는 것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상대적으로 소비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은 중요성이 떨어진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대해, 마케팅을 모른다며 그들을 비판 할 수 있을까?
<CEO에서 사원까지 마케팅에 집중하라>의 저자 니르말야 쿠마르(Nirmalya Kumar) 런던 경영대학원 교수가
마케터들에게 주의를 촉구하는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그는 마케터들이 최고 경영자의 니즈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마케팅 권위자의 말을 빌어 다음과 같이 마케팅의 위기 상황을 말한다.
‘권위 있는 마케팅 연구기관인 마케팅 과학 연구소(Marketing Science Institute)의
돈 레흐만(Don Lehman) 소장은 최근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능으로서 마케팅은 한계상황에 직면해 있다. (...)
어떤 사람들은 마케팅 담당자들이 판촉행사나 쿠폰 이벤트 이상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는 우리 나라의 현실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제 고객 만족은 단순히 상품 차원의 일이 아니라, 가치사슬이라는 개념 하에서 전 부서의 일이 되어 가고 있다.
쿠마르 교수는 전통적인 4P로 상징되는 마케팅 기능은
점점 기업들이 중시하는 매출과 이익향상의 관점에서 멀어지고 있으며,
마케팅 담당자들이 경영자의 시점에 맞추어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통 최고 경영자들은 제품이나 서비스의 품질향상, 원가절감, 고객맞춤화 향상,
더욱 정교한 커뮤니케이션 등의 다양한 측면을 동시에 향상시킬 수 있는 사안만 챙기므로
마케팅 담당자들은 4p를 뛰어넘어
엔지니어링, 구매, 제조, 재무, 회계 등 가치사슬의 모든 영역에 대해 이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기업의 마케팅 팀 내에서
그 회사만의 가치사슬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마케팅의 제반 지식을 두루 갖춘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외부의 컨설턴트를 굳이 조직의 리더로 영입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영업과 생산은 물론이요, 고객 상담실까지
회사 전체가 가치 사슬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4P 마케팅만을 해왔던 사람들
-특히 문과 출신들의 경우-의 이해나 액션 범위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게다가 개인의 사고가 기존의 마케팅 범주를 뛰어넘지 못하는 경우,
이미 잘 알고 있는 4P에 더욱 집착해서 성과를 내려는 안간힘이 커지게 된다.
4P 중에서 두드러지는 업무는 상품화나 광고이다.
이런 일들은 상품이나 광고물 같은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있기에 ‘일’이라고 간주되며,
그 외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일들은 일로써 평가되지 않는다.
정말이지 상품화 업무를 하지 않으면 마케팅에 대한 이해가 발달한 소비재 분야의 회사에서도 ‘논다’는 오해를 받기 쉽다.
조직에서 월급을 받는 이로써 ‘논다’는 시선은 정말 불편하다.
무엇인가를 창출하고 싶은 열망은 커지지만
요즈음과 같은 불경기에서는 웬만한 대 기업이 아니고서야 95%가 실패한다는
신상품 출시나 커뮤니케이션에 돈을 투자하는 것이 쉽지 않다.
마케팅 고유의 활동, 마케팅 팀의 위상이 위축될 수 밖에 없다.
바로 이 대목에서 마케터 지망생이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미래 마케팅의 흐름.
디지털 사회와 그 이후의 창조적 사회에서 마케팅이 고유업무로 과연 무엇을 가져가야 하는가를 고민하면서,
스스로 마케팅 업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리고 준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마케팅에 공식이 있어서 ‘이렇게 하면 이런 결과가 나온다’ 는 정석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그렇지 않기에 ‘마케팅 팀은 돈만 쓰고 성과는 없는 조직’이라는 딱지표가 붙기 쉽다.
취업준비자의 입장에서 우선 생각해야 할 것은 ‘왜 그 기업 내에 마케팅 팀이 존재하는가’이다.
산업분야마다, 조직마다 마케팅 팀에 요구하는 역할이 다르며
그 역할을 충족시키기 위해 마케팅 팀이 해야 할 일도 다르다.
책에서, 교육과정에서 이렇게 배웠다고, 그것만을 마케팅으로 생각하고 배운 것만을 시행하려고 한다면
스스로 고립을 자처하는 것이다.
회사에서 마케팅 팀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은 자신이 생각하는 마케팅과 어떻게 차이가 있는지를 회사의 입장에서 보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수용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마케팅을 하는 곳을 찾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