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마케팅은 여러분이 지금까지 교육을 받으면서 은연 중 상상했던 것과 달리
-그리고 앞에서 누누이 강조했듯이- 회사의 사업에 대단한 원동력이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회사에 따라서는 마케팅 팀에 대한 기대 수준이 매우 낮은 곳도 있을 것이다.
이것을 위해 내가 그토록 선행학습을 했단 말인가,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회사에서 원하는 것은 당신이 심혈을 기울여 ‘배운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놀랄 것 없다.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하자.
둘째, 회사에서는 ‘아무나’ 마케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알 리스와 로라 리스는 <경영자 vs 마케터>에서
“마케팅은 너무나 복잡 미묘해서 마케팅 경험도 별로 없고,
마케팅 원리도 모르는 경영 분야 사람들에게만 맡겨둘 수도 없다.”라고 했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은 좀 다르다.
회사에서는 굳이 마케팅 백그라운드를 가진 사람에게만 마케팅을 맡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마케팅 백그라운드가 없어서 디테일한 사항에는 서툴러도,
같은 관점을 가진 ‘좌뇌형’의 의견에 더 귀 기울인다.
사실 가장 선호하는 인재는 엔지니어 전공에 경영학적 지식을 갖춘 사람이다.
거기에 덧붙이자면 실제 마케팅 경험과 지식이 성과와 반드시 비례하지만은 않더라는 사실.
정말 희한하게도 마케팅 공부를 한 적 없는, 생산팀의 일을 하던 직원이 마케팅 팀으로 이동한 후,
신상품을 런칭해서 성과를 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심지어 특진까지 했다),
누가 보아도 훌륭한 마케팅 백그라운드를 지닌 직원이 아낌없는 마케팅 자원을 받고
제대로 된 프로세스를 밟았음에도 불구하고 신상품 런칭에 실패하기도 한다.
이 경우 참으로 당황스럽다.
분명히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그래서도 안 되는데, 이런 경우가 실제로 생기다니.
그런 점에서 마케팅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셋째, 영업이나 기술직과는 달리 마케팅은 성과 기여도를 측정하기가 어렵다.
효율적인 마케팅 도구를 찾기 위해, 마케터는 광고나 프로모션 같은 일련의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끝낸 후
-즉 비용을 투입한 후-에는 반드시 성과측정을 한다.
이 상품이 잘 팔렸다면 이는 무엇 때문인가, 안되었다면 무엇 때문인가.
마케팅을 잘해서? 그렇다면 광고의 힘? PR의 힘? 영업에서 잘해서? 제품이 좋아서? 등등.
팔리면 팔리는 대로, 안 팔리면 안 팔리는 대로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
이때 반드시 나타나는 현상.
잘 팔리는 상품에 대해서는 각 부서마다 공을 내세우지만,
잘 안 팔리는 상품에 대해서는 대부분 사람들이
마케팅 팀에서 마케팅을 잘 못했기 때문이라고 암묵적으로 동의한다는 것.
마케터가 여러 객관적 지표를 찾아 나름의 실패요인을 분석해서 보고를 하지만,
경영진이 이 보고서를 전적으로 수용한다는 확신은 들지 않는다.
왠지 패자의 변명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랄까.
오히려 보고서의 숫자보다는 경영진들이 직접 만난 소비자나 유통업자들,
혹은 경영진의 가족이 툭 던진, 지나가는 한 마디의 영향이 더 크다.
그 한 마디가 무엇이냐에 따라 –만약 광고를 잘 만들었다라고 하면 광고덕,
가격이 적절하다고 하면 가격- 그 덕에 매출이 오르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 정도면 다행이지,
‘마케팅을 잘 못 하는 것 같다’고 아무 생각 없이 한마디를 던지기라도 하면
경영진이 갑자기 마케팅 팀 개구리들의 '존재의의'를 생각해 보는 불상사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