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펙이 좋지 않다. 사람을 자격 요건에 따라 재단 한다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놈의 스펙이 좋지 않아 백여 번에 가까운 입사지원에도 취업의 바늘구멍을 뚫지 못했기에 꽤 오랫동안 백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신 아버지가 동네에 유명한 가방 공장이 하나 있으니 이력서 한번 넣어 보라고 하셨다. ‘공장’ 이라는 두 단어에 머릿속에서는 바쁜 기계 옆에서 일렬로 앉아서 가방을 만드는 내 모습이 상상되었다. 그것을 상상하고 나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무시당한 기분이 든 나는 아버지께 웬 공장이냐며 신경질 적으로 대답했다.
“아버지, 그래도 공장이 뭐에요. 저는 나중에 더 좋은 회사에 취직하겠습니다.”
“언제까지 백수 생활 할 거냐. 이제 너도 취업을 해야지. 정신 좀 차려라.”
아버지의 다그침이 섞인 잔소리를 들으니 더욱 오기가 나서 말씀드렸다.
“아버지 저는 더 좋은 회사 들어갈 겁니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
아버지의 한숨을 뒤로하고 방문을 신경질 적으로 닫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다시 컴퓨터 게임을 켰다.
며칠 뒤, 친구들과의 약속이 생겨 시내로 가는 버스 안이었다. 버스가 출발하고 두어 정거장이 지날 즈음이었다. 창 밖에 시선을 던져두고 멍하니 있는데 길 건너 모양새가 독특한, 그리고 세련된 건물이 하나 보였다. 십 수 년을 한 곳에 살았어도 처음 보는 건물이었다. 새삼 나의 무심함에 놀랐다. 나중에 찾아보리라 생각하면서 핸드폰을 꺼내어 사진을 찍어 두고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 날,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는 다음날, 깨질 것 같은 두통과 그맘때쯤이면 ‘오늘은 절대로 술을 먹지 말아야지.’라고 굳은 결심을 하지만 오후 4시가 되면 숙취가 없어지고 다시 핸드폰을 붙잡고 같이 놀 친구들을 구했다.
점심에 일어나 저녁 어스름이 다가올 때까지 여느 때와 같이 컴퓨터 게임에 매진하고 있던 중 불현듯 어제 버스 안에서 본 회사가 궁금해졌다. 기억이 난다는 것이 신기했다.
‘무슨 회사 길래 이런 촌동 네에 그렇게 세련되게 지었지?’
하는 생각과 함께 핸드폰을 꺼내어 어제 버스를 타고 지나가며 찍어 두었던 사진을 열고는 검색을 했다. 독특한 배경화면과 함께 화면 가득 이름만 대면 알만한 핸드백들이 빼곡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순간 아버지가 말씀하신 한마디가 머릿 속을 스쳤다.
“가방 공장에 이력서라도 내봐라.”
‘가방공장, 가방공장, 가방공장. 아! 이 회사구나!’
단 숨에 아버지가 말씀하셨던 그 곳이 이 곳임을 알아차렸다. 회사 홈페이지를 천천히 보던 중 채용공고의 게시판을 들어가 보았다. 우연찮게도 채용공고에는 ‘해외영업팀 직원 구인’이라는 글이 게시 되어 있었다. 올라온 지 얼마 안 된 게시 글이었다. 게시글을 클릭하고는 채용공고의 내용을 천천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해외영업팀 사원모집, 영어 가능자, 업무 특성 상 해외 출장이 잦음.’
해외 출장이 잦다는 말에 이미 머릿속에는 선글라스를 쓰고 해외 출장 중 바이어들과 악수를 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래! 이곳에 지원해보자!’
길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하는 업무인지 따져보지도 않았다. 오래 전 다운 받아 놓았던 이력서 양식을 열어 빈칸들을 채워 넣고는 마감시간이 거의 다 되서야 제출할 수 있었다. 며칠 뒤
‘귀하의 뛰어난 역량은 충분하나...’로 시작하는 문자를 받고는 탈락했다. 준비도 안 돼 있는 나에게 탈락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날 이후 왠지 모를 오기가 생겼다. 근성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끝까지 도전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몇 가지 규칙을 정하여 실행했다.
첫째, 주기적으로 이력서 내용을 업데이트 시켜 놓았다. 취득한 자격증이나 도움 될 이야기들을 이력서 최근 취득한 순으로 명시해놓고 모든 자격증은 스캔하여 사본들을 미리 준비해 놓았다. 지금이야 내 머릿속에 언제까지고 있을 것 같다 생각하지만 당장 내일이 되면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둘째, 지인을 활용했다. 이 부분의 경우 취업준비생들은(물론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 이지만) 회사를 찾아볼 때 제일 먼저 보는 것이 연봉일 것이다. 초봉이 1,800만원인지 2,400만원인지, 주 5일제인지, 복리후생은 어떤지를 볼 것이다. 사실 그런 것은 취업을 한 후에 걱정해도 된다. 어차피 거기서 거기다. 초반에 남들보다 1,000만 원 정도 더 받는다고 해서 인생 자체가 달라지진 않는다. 나는 주위 사람들을 통해 회사의 분위기나 도움될 만한 정보들을 얻었다. 해당 직장에서 근무하는 사람으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듣는 것이 가장 정확한 정보일 테니까.
셋째, 나는 한 번의 낙방 뒤, 그 다음 날 부터는 인터넷 접속 시 뜨는 창을 그 회사의 홈페이지로 수정하였다. 그리고 채용 공고는 아차 하는 순간에 떴다가 내려갈 수가 있다. 원하는 직장이 있다면 매일 매일 확인해야 한다.
넷째, 사진을 붙였다. 나는 지금도 목표가 생기면 사진을 붙인다. 나는 원하는 목표가 있으면 출력을 해서 소지하고 다닌다. 핸드폰 배경화면이나 SNS 프로필에 저장해두면 일상에서 목표를 잃지 않고 인식하게 된다. 내가 원하는 기업이라면 직접 방문해보고 사진을 찍어서 보관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내 모습을 현실인 것처럼 상상해본다.
다섯째, 반복적으로 면접 연습을 했다. 직장을 구할 당시에는 아침에 일어나 전신 거울 앞에 앉아서 적어도 수백 번은 면접 연습을 했다. 머리는 까지 집을 짓고 있었고 눈에는 눈곱을 띠지도 않은 채 와이셔츠와 넥타이, 그리고 위에는 정장의 겉옷만 입고 하의는 속옷차림으로 의자를 가져와 거울 앞에 앉았다. 그리고는 반복적으로 자기소개를 연습했다.
연습을 실전처럼 해야 실전에 연습 때처럼 편안해 질 수 있다.
결국 두 번째 도전에서는 서류심사를 통과했고 면접까지 보게 되었다. 면접장은 숨 막히는 긴장감이 흘렀다. 누군가 헛기침이라도 할라치면 긴장의 끈이 점점 조여져왔다. 나름 철저히 준비를 한다고 했지만 나는 또 다시 낙방하고 말았다.
그렇게 1년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채용공고는 6개월에 한 번꼴로 올라왔다. 그렇게 3번의 도전 끝에 나는 결국 최종 면접까지 오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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