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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은 입사한지 8개월이 지날 즈음 발생했다. 그때까지 여전히 새벽에 귀가하고 가끔 밤을 새기도 했다. 친구들은 더 이상 모임에 오라는 전화 한통 하지 않았고, 토요일은 그 주에 못다 한 일을 처리하는 날이었으며 일요일은 다음 주의 업무 준비와 발주체크를 위한 출근이었다. 말 그대로 월화수목금금금의 연속이었다.


    계속되는 야근과 철야로 인해 제대로 쉬어본지가 언젠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일요일 저녁 시간은 내일이 월요일이라는 사실 때문에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숨이 갑갑해지는 증상까지 생겼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저녁이라고 해봤자 아주 늦은 저녁이었지만) 자리로 한통의 전화가 시끄럽게 울려댔다.


“따르릉, 따르릉”
“네, OOO무역회사 해외영업 3팀 ㅇㅇㅇ 입니다.”
“여보세요! ㅇㅇㅇ씨?”


소리치는 듯한 목소리가 수화기 넘어 날아와 귀에 꽃혔다.


“네, 맞습니다. 말씀하세요.”
“여기 중국인데 왜 베트남 물건이 이쪽으로 왔어!”
상대방은 다짜고짜 반말에 소리를 지르며 물었다. 
“네?”
“물건 잘못 왔다고! 에이씨X"


욕지거리와 함께 전화가 거칠게 끊어졌다. 잠시 동안 멍하니 있는데 다시 전화가 울렸다.


“따르릉, 따르릉”


조심스럽게 받았다.


“네, 해외영업 3팀 입니다.”
“여기 베트남인데요. 중국께 이쪽으로 왔어요. 이거 어떻게 할 겁니까! 지금 물품 잘못 와서 현지 공장 생산 라인이 모두 멈춰있는 상태에요! 아 진짜 난감하네!”


‘뚝!’


불과 10분 남짓한 시간에 두 개의 나라에서 받은 전화는 쏟아지는 피로를 싹 달아나게 만들었다. 마음은 불안과 공포로 차기 시작했고 늦은 시간에 어찌 해야 모른 채 발만 동동 굴렀다. 


    다음 날, 회사는 발칵 뒤집혔다. 이른 아침부터 운영부서로 불려간 나는 잘못 보낸 물품 때문에 현지 생산 라인이 멈췄고 그것에 대한 회사 손실이 2만 달러가 발생했다고 했다. 평소 깐깐한 운영부서와 영업팀하고는 사이가 좋지 않았기에 그들은 더욱 나를 몰아쳤다. 불려간 운영부서에서 30여명 정도의 사람들에 둘러 쌓여 집중 포화를 당했다. 따지고 보면 속도를 중요시하는 영업팀의 특성 상 상사의 결재 없이 선 발송 후 결재를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고 그러다보니 평소에도 크고 작은 실수들이 발생하곤 했는데 결국 내가 대형 사고를 치고만 것이었다.


‘제가! 물어내겠습니다!’


라는 말이 목구멍 까지 차올랐으나 순간 속으로 2만 불을 한화로 계산해보고는 아차 싶어 그저 죄송하다고 머리를 조아릴 뿐이었다. 한참을 사과한 끝에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자리에 전화벨이 울렸다. 이사님이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입사 초기 이후 두 번째 방문한 이사님의 사무실은 낯설고 무거운 공기로 가득했다. 그곳에서 상황 설명을 한참을 한 후에 일단 돌아가라는 말을 듣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거짓말 같이 또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더 이상 내려앉을 심장도 없는데 공손히 받쳐 들은 수화기 너머로 회장님실의 비서 목소리가 흘러왔다. 


“회장님이 잠깐 올라오시래요.”


무심한 한 그녀의 목소리에 내려앉을 여력이 없는 심장은 다시 덜컥 내려앉았다. 회사 제일 위 층에 위치한 회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비서의 얼굴이 시크하다. 노크를 하고 까치발로 들어가니 평소에 인자한 얼굴의 회장님은 없었다. 그는 더 이상 빨개질 수 없을 만큼 빨개질 수 없는 얼굴로 분노를 뿜어내고 있었고 그 분노를 참아내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업무 상.. 조금.. 차질이 있었나 봐요. 그렇죠?”


달아 오른 얼굴에서 정말 어울리지 않는 절제된 목소리가 나왔다.


“네...조..조금 차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내일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를 예약했어요. 그쪽 회장한테 경과보고 하려고 말이지요. 그러니 내가 경황을 파악 할 수 있게 경위서를 써와요. 나가보세요.”
“네..”


돌아서는 내 뒤통수에 그가 다시 말했다.


“아주 자세하게. 알았죠?”
“네... 잘 알겠습니다!”


대답을 한 뒤 황급히 그의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많이 혼나진 않았다는 안도감에 한숨을 쉬고는 사무실로 내려갔다.


‘그나저나 경위서는 어떻게 쓰는 거지?’


자리로 돌아온 나는 엑셀 프로그램을 켜고 경위서를 작성했다. 경위서를 써 본적도, 일정한 형식을 갖춘 문서를 써 본적도 없는 나는 그저 엑셀에 서술식으로 나열해갔다. 


그렇게 작성된 경위서를 출력해서 처음 보는 결재 판에 끼워 놓고는 다시 회장실로 올라갔다. 문을 노크하고 들어갔다.


“똑!똑!”
아직도 화가 가시지 않은 얼굴이었다.
“왜 또 왔어요?”
“네, 회장님. 경위서 써왔습니다.”
“벌써? 줘보세요.”
“네!”


의기양양하고 절도 있게 결재 판을 건넸고 이렇게 시작했다.


‘지난 번 배송 건에 대해 죄송합니다.’라고 시작하는 총 3장에 걸친 경위서는 지금 생각해보면 사건의 경위를 밝힌 것이 아니라 거의 반성문 수준이었다.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공공기관에 있던 사람으로서 지금 생각해보면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건네받은 서류를 읽어 내려가는 그의 얼굴은 점점 터지기 직전의 빨간 풍선과 같이 변했고 급기야 서류를 공중에 던졌다. 딱, 드라마 속 그 장면 이었다. 


“야이!!!! 나가!!! 나가!!!”





나는 도망치듯 사무실을 나갔다. 문을 닫고 나오는데 그가 뒤통수에 대고 다시 외쳤다. 


“영어로 써와! 영어로!”


도망치듯 내려온 사무실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서 사전을 펼치고는 영어로 다시 작성하기 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작성된 경위서와 뉴욕행 비행기 티켓을 들고 회장님은 다음 날 머나먼 나라로 떠났다.
결국 경위서와 깊은 반성으로 끝난 사건이었지만 그 날 이후 나는 사내에서 회장님을 해외여행 보낸 사원으로 일약 슈퍼스타가 됐다. 한동안은 어딜 가던 그 이야기뿐이었다.


“여~슈퍼스타~”
“야~회장님 해외여행 시켜드렸다며?”


    정말이지 쥐구멍으로 숨고 싶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만두고 싶은 충동이 일었고 이죽거리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들을 때면 나도 모르게 주먹을 쥐곤 하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렇듯 원하지 않던 ‘슈퍼스타’의 삶은 힘들었다. 


    그 후 한 번의 큰 실수는 앞으로 일을 함에 있어서 수십 번 씩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더 이상의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확인에 확인을 거듭했고 결국 유래 없는 수출 목표 초과 달성으로 다음 해 우수 직원 표창 까지 받았다. 


    만약 거기서 포기하고 일을 그만두거나 주저앉았다면 아마 평생을 후회로 남을 것이었다. 후회 없이 불태웠기 때문에 나중에 그 회사를 나왔을 때에는 미련이 남지 않았다.


    잔잔한 파도는 일등 항해사를 만날 수 없다고 했다. 때로는 거친 파도에 부딪히고, 때로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방향을 잃고 당장 어디로 뱃머리를 돌려야 할지 모르는 경험을 해야 최고의 항해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은 바쁘다, 그리고 굉장히 빠르다. 그 속에서 자주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목표를 다듬어 가길 바란다. 그런 노력들이 하나 둘 모여가기 시작하면 그대들의 삶은 가치 있는 삶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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