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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된다, 된다. 세 번이면 모든지 잘 되게 되어있어. 뭐든지 된다고 생각하고 행동해. 업무하면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다면 마음껏 도전해. 책임은 내가 질테니까. 야! 팀장이 뭐하는 사람이냐? 직원들 잘못하면 대신 잘못했다하고 팀원들 술값 내는 게 팀장 아니냐? 직급 높은 사람들 월급을 더 많이 주는 건 그런 이유야. 그러니까 네가 하고 싶은 거 해.”


 화창한 봄 점심시간, 팀장은 고춧가루가 낀 허연니를 드러내며 씩 웃고는 다시 얼큰한 칼국수로 얼굴을 담갔다. 


 3년여의 무급과 계약직 생활 끝에 정직원이 된 어느 날 팀장이 건넨 말이다. 그는 나에게 직장 생활과 인생의 등대 같은 존재다.


 그와의 만남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집에서 뒹굴뒹굴 하릴 없이 백수 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다. 매일 버릇처럼 접속을 하던 구직 사이트에서 때마침 근처 청소년수련관에서 영어강사를 구한다는 말을 듣고 지원했고 어렵사리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그를 만났다. 그의 첫인상은 산(山)이었다. 185cm 는 족히 넘는 키에 운동선수 출신 때문인지 체격 또한 거대했다. 정수리는 탈모로 인하여 새둥지 같았고 말소리는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 했다. 모든 행동에 거침이 없는 스타일이었다.


 그는 항상 시끄럽고 분주했고 함께 있으면 마치 시끄러운 시장에 있는 것 같았다. 같이 있던 8년 동안 조용한 말투를 들어본 적이 없다. 큰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업무 스타일은 누구보다도 세밀하고 철저했다. 자신의 팀원들을 먼저 챙기는 성격 때문에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 또한 많았다. 그런 그와 어울리고 가까이 지냈으니 그런 시기와 질투는 고스란히 나의 몫이 될 때가 많았다. 그의 성격은 자연스레 롤모델이 되었고 그를 닮기 위해 노력했다.


‘그 누군가가 되고 싶다면, 그 와 같이 입고,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하라.’


사람을 먼저 챙기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동료들과의 협동을 중요 하게 생각했다. 


  그는 뛰어난 성과는 항상 직원들에게 돌렸고 누구보다도 힘찬 박수를 보내주었으며, 우리들에게 오늘만을 사는 기분으로 열심히 살기를 바랐다. 직원 각각의 성격과 특성을 고려해 업무와 연결 했고 자신의 특성에 맞는 업무를 진행하는 직원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즐겁고 뛰어난 성과들을 거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회의실로 호출한 그는 나에게 뜬금없이 레크리에이션 연수를 다녀오라고 했다. 


“예? 레크리에이션이요? 저는 레크리에이션에 관심이 없는데요.”
“그냥 속는 셈 치고 배워봐. 언젠가 도움이 되겠지.”


그날 이후 나는 떠밀리듯 자격증 코스 반에 등록을 했다. 일주일간 모르는 사람들과 손을 붙잡고 스포츠댄스를 췄고 툭 치면 337박수가 나올 정도로 교육을 받았다. 군대가 따로 없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교육이 끝났을 땐 더 이상 나의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예???!!! 축제 사회를요?”


일주일 후 회사로 복귀한 뒤 그는 모니터에서 시선을 때지 않은 채 말을 이어갔다.


“그래, 다음 주에 열릴 축제에서 네가 사회를 좀 봐줘야겠다.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오지 않으니까 부담 없이 하면 될 거야.”


“하지만 저는 사회를 본적이 없는데요?”
“이제 할 거잖아. 김제동은 처음이 없었겠어?”
나는 들리지 않는 한숨을 길게 내뱉으며 물었다.
“몇 명이나 오는데요?”
“얼마 안 돼. 한 1,500명쯤?”
“예???!!!” 
“아, 그리고 니가 사회 한다고 명단에 넣어서 결재 났어. 열심히 해봐”


악마를 보았다...


씨익 웃는 모습이 사악해보였다. 살면서 사회를 본적이 없는데 하물며 1,000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서 사회를 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정신이 까마득해졌다. 너무 스트레스 받은 나머지 한번은 한 밤중에 자다가 “여러분!!!!”이라고 외치는 바람에 집안 온 식구가 깨어나기도 했다. 


 오지 않길 바라는 시간은 왜 이리 빨리 오는지. 행사 당일은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방 창문이 검정에서 어렴풋한 하늘색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다. 결국 한 숨도 못 잔채 집을 나섰다.


 말쑥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떠밀리듯 집에서 나와 행사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평소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비가 폭풍 같이 쏟아져서 행사가 취소되기를 바랐지만 그러기엔 날씨가 너무 화창했고 “지금까지 몰래카메라였습니다!”라고 누군가가 큰소리로 이야기 해주었으면 좋겠지만 그러기에는 도로 곳곳에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들이 즐비하게 걸려 있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고 전문 사회자의 행사 시작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천여 명의 관객은 박수와 함성을 질렀다. 함성소리는 마치 나에게 천둥과 같이 들렸다.
 1부가 막을 내릴 때 즈음 사회자가 2부의 사회자인 나를 소개 했다.


“네. 저는 여기서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2부에는 더욱 재밌는 사회자가 무대를 대신해 줄 겁니다. 지금까지 XXX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더욱 재밌다고 하지마!’


속으로 외쳤다. 그 말 한마디가 긴장된 마음을 짓눌렀다.


 흥겨운 퇴장음악 소리와 함께 재촉하는 스텝의 손짓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떠밀리듯 무대로 나갔다.
활기차게 인사를 하려고 입을 땐 순간 내입에서는 마음속에서 수 만 번은 되풀이 되고 있었던 말이 튀어 나왔다.



“된다! 된다! 된다!”


수없이 속으로 되풀이 하고 있었던 각오가 하필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순간 조용한 정적이 흘렀고 나의 두 눈은 수천 개의 눈들을 피해 이리저리 방황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점점 하얗게 되며 수천 개의 눈동자들은 화살이 되어 나에게 꽂혔다. 큐시트를 들고 있다는 사실 조차 잊은 나는 마이크를 들고 멍하니 서있었다. 반면에 두 다리는 정장바지 안에서 미친 듯이 떨리고 있었다. 떨리는 두 다리를 잡기 위해 있는 힘껏 힘을 줬음에도 불구하고 그럴수록 두 다리는 진동벨이 울리듯 더욱 떨렸다. 수 천 개의 눈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몇 초의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무대 옆쪽에서 스텝이 허공에 손을 돌리며 빨리 진행하라는 신호가 보였다.




그 언젠가 김제동이 방송에서 한 말이 생각이 스쳐갔다.


“긴장 되고 떨릴 때에는 나를 가장 사랑스럽게 쳐다보는 사람. 그 사람을 보고, 의식하며 말씀해보세요. 그러면 떨림이 멈출 겁니다.” 


생각이 스치자마자 두 눈은 사랑스러운 관객을 찾아 미친 듯이 헤맸고 정신없이 찾아 낸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머리 한 개만큼 열쇠가 삐쭉 나온 사람을 발견했다. 
 팀장이었다. 나를 지금 이 무대 까지 올려놓은 그 팀장이었다. 나를 사랑스럽게 쳐다보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화보다는 외국에서 한국 사람을 만난 기분이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는 머리 위로 엄지를 들어 올리며 싱긋 웃었고 그 순간 나는 이상하리만큼 떨림이 멈추고 그제야 큐시트가 내 손에 들려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큐시트에는 ‘[첫 인사] 안녕하십니까!(활기차게)’라고 적혀 있었고 나는 큐시트에 따라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관객들이 인사로 화답을 해주었고 그제야 그들과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예정된 2시간의 시간이 지나고 끝인사와 함께 무대 뒤로 퇴장했다. 뒤로 돌아오자마자 두 다리에 경련이 일어나며 그 자리에서 털썩 쓰러졌다. 모든 스텝들은 행사의 마무리에 신경을 쓰느라 내가 쓰러진 것을 아무도 몰랐다. 나는 쓰러져서 경련이 일어나고 있는 두 다리를 주물렀다. 그런데 어디선가 불쑥 나타난 손이 거칠게 두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주무른 다기 보다는 잡고서 쥐어짜듯 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그 팀장이다. 그는 해맑게 웃으며 이야기 했다.


“어때? 기분 죽이지?”


 그랬다. 끝나고 나니 끈질긴 연습과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긴장의 시간은 이미 저 멀리 과거가 되어있었고 나는 그 과거를 이긴 사람이 되었다. 오로지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과 안도감만이 온 몸을 감쌌다. 그렇게 또 한 번의 경험과 성장을 해냈다. 그 팀장이 밉지가 않았다.


또, 한번의 성장...을...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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