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후 1개월은 신입 사원들끼리 한 사무실에 모여 기본적으로 알아야할 업무를 배우고 각 부서에 인사를 다니곤 했다. 회사가 워낙 크다보니 인사에만 꼬박 하루가 걸렸다.
거래처에 인사를 하러 다닐 때의 일이다. 나이가 지긋하신 사장님이 뛰어나오셔서 우리에게 ‘빅바이어’라고 하시며 90도로 인사하는 모습에 어쩔 줄 몰라 했던 기억이 난다. 돈이 사람을 굽히게 만든다는 사실에 조금 씁쓸하기도 했고 내심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도 했다. 그만큼 업계에서는 유명한 회사였다.
신입사원의 회사생활은 화려했다. 삼시세끼가 제공되는 호텔 급의 사내 식당, 두 시간 정도의 넉넉한 점심시간, 회장님과의 저녁 식사는 회사 앞에서 1인당 1대씩 기다리고 있는 최고급 세단 자동차타고 서울의 최고급 호텔의 뷔페로 가기도 했다. 회사의 화려한 외관은 드라마 촬영 장소가 되어 주말이면 연예인들이 와서 촬영을 했고 방영한 드라마는 한류 열풍을 힘입어 일본 관광객의 관광 코스가 되었다. 동종업계에서 전 세계 1위의 매출과 명성. 신입사원들은 가는 곳마다 인사를 받고 주목을 받았다. 정확히 입사 후 6개월 까지는…….
그렇게 화려한 1달의 신입사원 교육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갔다. 각자 어느 부서로 배정을 받을지 궁금해 하며 서로 들뜬 기분이었다. 팀마다 브랜드를 2~3개씩 맡고 있었고 신입사원 모두는 명품브랜드를 다루는 팀으로 들어가길 원했다. 각 팀에 들어가게 되면 전 세계에 출시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신상품을 제일 먼저 얻을 수 있다는 행운도 기대에 한 몫 했다.
이윽고 인사부장이 들어왔다.
“여러분 한 달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생소한 용어와 어려운 업무 교육이었을 텐데 모두 훌륭하게 해내셨습니다. 지금 부터 여러분들이 앞으로 몸담게 될 부서를 호명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해외영업 1팀을 호명하겠습니다. 먼저……. 이지영씨!”
“네!”
명문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수 내내 똑 부러지는 왕언니 역할을 한 누나였다. 일순간 장내에서는 탄식이 터졌다.
“아!”
해외영업 1팀은 회사의 주축이 되는 주요 브랜드를 모아놓은 팀이었다. 누구나 들어가고 싶지만 누구나 들어갈 수 없는 팀이기도 했다. 그녀의 똑 부러지는 성격과 모두를 아우르는 능력에 모두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다음은 해외영업 2팀입니다.”
“김영수씨?”
“네...”
그는 연수 내내 조용하고 결혼을 앞둔 20대 후반의 경상도 사람이었다. 그의 얼굴 표정이 어두웠다.
“해외영업 2팀 입니다.”
해외영업 2팀은 해외발령이 매우 빈번한 곳이었다. 거의 해외에 나가야 한다고 봐도 무방했다. 실제로 해외로 발령 받아 나간 직원 중에는 수년 째 타지 생활을 하는 직원이 많았다. 해외 발령은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에 좋아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만큼 매우 긴 시간을 타지에서 보내야 했기에 기피하는 팀 중에 하나였다.
“다음은 해외영업 3팀 입니다.”
일순간 술렁이던 장내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모두의 눈이 인사부장의 입으로 향했다. 모두의 눈은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제발 저 팀만 아니면 돼!’
3팀은 중저가의 브랜드를 전담해서 수출입 업무를 하는 팀이었다. 중저가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상품에 대한 수요가 많았고 그만큼 회사 내에서 업무가 제일 많기로 소문 난 팀이었다. ‘출근은 있지만 퇴근이 없는 팀’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영업 3팀의 일주일은 모두 월요일이라 해서 ‘칠월팀’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악명 높은 팀이었다.
일순간 무거워진 분위기에 인사부장도 발표를 뜸 들였다. 여기저기서 긴장 때문에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의 입 모양이 양 옆으로 천천히 벌어지는 것을 본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연수 내내 뺀질댔던 박OO이 아닌 것이 명백해 졌고 외국 대학을 졸업해서 영어를 잘한다고 엄청 뻐기던 전OO도 용의 선상에서 제외됐다. 나는 제발 그가 ‘이’라고 발음하기를 그 짧은 시간에 수 만 번 기도 했다. 양옆으로 찢어지던 입에서 드디어 성대가 떨리며 소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기이임!”
나를 제외한 김씨는 2명이었다. 인사부장의 혀가 거센 소리를 내기 위해 서서히 윗니와 아랫니 사이에 위치했다.
“태에에”
돌이킬 수 없었다. 결국 내 이름이 호명됐다.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과 웅성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영업3팀으로 배정 받은 후, ‘힘들어 봤자 얼마나 힘들겠어?’라고 위로도 하고 마음을 다잡았지만 오판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각자의 부서를 배정 받은 신입사원들은 서로의 힘내자고 독려하며 흩어졌다. 사무실은 화려한 로비를 지나 뒤쪽으로 돌아 들어가면 있었다. 처음 보는 직원들이 그제야 보이기 시작했고 다들 왠지 모르게 지쳐있는 모습이었다.
한참을 돌아 들어가니 저 멀리서 커다란 불투명 유리문이 다가왔다. 유리문 안쪽에서는 형광등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문은 점점 커지며 다가왔고 덩달아 가슴도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인사부장이 문을 당겨 열었다. 문이 열리면서 사무실 안의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마치 넓은 바다와 같이 파티션과 책상들이 펼쳐졌고 어림잡아 100여명의 사람들이 그 곳에 있었다. 그들은 굉장히 분주했다.
서서 소리치며 중국어로 전화하는 사람, 차가운 안경 너머의 눈빛으로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사람, 안절부절 못하며 일본어로 전화하는 사람, 금발의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하는 사람. 서로 다른 언어 속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의 책상에는 산더미 같은 서류가 쌓여있다는 점이었다. 그곳은 회사 로비에 있는 그랜드 피아노도, 실내 연못도 없는 삭막한 사막과 같았다. 나는‘해외영업 3팀’이라 쓰인 곳으로 안내 받았다. 그곳에는 총 6명의 직원이 있었다. 그들 역시 분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큰 소리로 인사 했다.
“안녕하십니까! 신입사원입니다!”
“어, 어, 그래, 그래. 반가워. 어서 앉아.”
그것이 그 날 그들과 처음이자 마지막 대화였다. 3팀 직원들은 하루에도 서울과 부산을 밥 먹듯이 왕복했고 거래처에서 밤을 새는 경우가 많아 아예 출근을 거래처로 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 분위기에서 업무를 체계적으로 인수인계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오죽하면 과장도 알려주고 그런 거 없으니 알아서 배우라고 했을까.
말 그대로 정신없는 한 달 이었다. 출근은 오전 8시 30분 까지였지만 자발적으로 조금씩 앞당겨지던 출근 시간은 어느새 오전 7시로 옮겨져 있었고 그마저도 팀에서도 제일 늦은 출근 시간이었다. 하루의 시작은 출근과 함께 이메일 확인으로 시작했다. 메일함을 열어보면 지난 밤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각지에서 날아온 메일이 보관함에 수북했다. 메일 보관함에는 하루 평균 100여 통의 이메일이 도착해 있었고, 사보나 공지사항 등을 제하고 나면 답변을 해야 하는 메일은 그 중 7 ~80여 통이었다.
거의 모든 메일을 영어로 답변을 해야 하니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도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회사에서 제공하는 원어민과의 수업을 매일 점심시간에 참가 했고 그제야 점심시간이 괜히 2시간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곳에는 나 같은 신입사원부터 차장까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오전에 메일 보내기와 점심의 영어 수업을 듣고 나면 다시 오후 2~3시까지 메일 답변 업무가 이어졌다. 그 업무가 끝나면 다른 업무가 시작됐고 눈 깜작할 새에 저녁 시간이 됐다. 저녁엔 수출입 업무의 시작이었다. 어느 정도 일이 마무리가 되어갈 쯤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면 시간은 새벽 3~4시가 되어 있었고 새벽의 찬 공기와 함께 퇴근해서 씻고 잠자리에 누울 때 즈음이면 멀리서 동이 터오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한 달이 지났을 땐 몸무게가 76kg에서 64kg으로 줄어 있었다. 애초부터‘신입사원이니까’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우리는 업무 투입과 동시에 프로와 같이 일을 해야 만 했고 그곳은 소리 없는 전쟁터였다.

그렇게 세 달이 지나고 나서야 어느 날 밤 11시. 회사 앞 자그마한 포장마차에서 간신히 입사 동기들과 함께 조촐한 모임을 가질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선 입사 초기의 밝은 모습들을 볼 수 없었다. 하나 같이 초췌한 모습이었고 입사 초기 깔끔한 정장과는 달리 이곳저곳 얼룩이 져있는 편안한 티셔츠와 면바지 차림이 대부분이었다.
“어? 영업 5팀 진원 씨는 안 왔어?”
“몰랐어? 지난주에 퇴사했어.”
간간히 사내 메신저로 힘들다고 이야기 했던 그다.
‘정말 많이 힘들었구나. 조금만 더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아쉬움과 이름 모를 죄책감이 짙게 남았다. 안부전화라도 해야겠다 생각하며 모임은 서로 별다른 말없이 끝났다. 모임의 말미에 서로
“그래, 서로 잘 버티자고!”
라고 하며 각자의 집으로, 회사로 돌아갔다. 오랜만에 일찍 귀가하는 날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가족의 얼굴들이 매우 반가운 저녁이었다. 시간은 그렇게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