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에피소드를 작성해 봅니다.
오늘은 제가 대학때 전공을 했던 '산업공학'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특히 산업공학을 전공한 분들이 진로를 고민할때 참고하실 수 있는 글이면서도, 동시에 대학 진학이나 편입을 고려하는 분들께도 도움이 될수 있도록, 이론적인 내용보다는 전공자로서 실제 커리어를 꾸려가며 경험한 내용을 토대로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아마 제 글이 정답은 아니겠지만, 어느정도 참고는 하실 수 있을겁니다.
산업공학...이라고 하면 우선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무엇을 배우는 학과인가요?'입니다. 워낙 다양하게 배우다보니 이과 속에 문과라고도 하고, 공대 속에 경영대라고도 표현하죠. 그냥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현시대가 요구하는 공학기술 중에 산업/경영의 현장에 직접 적용될 수 있는 것은 뭐든 배울 수 있는 학과이다 라구요.
'배우는' 학과가 아니라 '배울수 있는' 학과라고 표현한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데요. 그것은 곧 대부분 대학교의 산업공학과가 전공필수보다는 전공선택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본인의 열정과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타과의 왠만한 전공 수업까지도 많이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본인 하기 나름인 과가 바로 산업공학과입니다.
기본적으로 산업공학과의 커리큘럼은, 전통적인 생산관리, 경영과학(OR), 최적화(LP), 통계, 인체공학 등을 포함하지만, 최근에는 금융공학, HCI, UX, 기술전략, 제품개발전략, 그리고 심지어는 심리와 디자인의 영역까지도 상당부분 커버를 합니다. 정말 크고 모호한 학과죠? ㅎ
자, 그러면 본격적으로 산업공학을 나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죠. 이제부터 말씀드릴 내용은 거의 졸업한지 20년 가까이된 제가 직접 혹은 제 친구들이 실제로 진출해 있는 직업들의 나열입니다. 따라서 모든 것을 나열하지는 못했지만, 실제로 진출가능한 직업군이라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보다보면 아주 의외의 직업들도 만나게 되실거에요 ㅋ (교수나 학자가 되는 케이스나 혹은 고시패스해서 전문직으로 가는 케이스는 제외했습니다. 그건 산공과 외에도 다들 그렇게 하니깐요..)
1. 통신/IT/전자 회사
저보다 선배였던 80년대 학번들이 많이 진출하셨던 분야입니다. 산업공학을 나오면 뭔가 '최적화'라는 문제를 잘 풀수 있다고 생각되고, 또 한편으로는 뭔지 모르지만 좀 세련된 느낌도 있고 하니, 당시에 trend를 앞서가는 기술 회사들에 대부분 취직을 했죠. IBM, KT, SKT, 삼성전자, LG전자 등에는 그래서 산업공학 출신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병역특례 혜택이 적용되어서 주로 이런 기업들이 그런 병특 TO를 많이 갖다보니 생긴 현상이기도 하구요. 여하튼 많은 선배들이 이런 회사들에서 아주 잘 적응하고 좋은 기여를 하며 다니셨습니다.
2. 제조회사
사실 산업공학하면 또 어떤 분들은 '졸업하면 공장장 되는 과 아냐?' 라고들 하십니다. 네, 그래서 실제로 제조업체에도 많은 졸업생들이 포진되어 있죠. 대부분의 생산관리 부서 혹은 품질관리 부서에는 산업공학 출신들이 꼭 있기 마련입니다. 나중에 여기서 잘 풀리면 공장장이 되기도 하구요. (요즘은 공장장이라는 표현보다는 생산본부 본부장 등으로 표현하죠 ㅎ) 대부분 생산 라인의 효율성 제고나 품질 관리, 또 그 외의 일반적인 생산법인 관리 등을 담당합니다. 즉, 생산이라는 프로세스를 이해하면서 공장에서 필요한 경영 및 혁신 업무를 담당할때가 많죠.
3. 컨설팅 회사
앞에 1,2번이 주로 80년대/90년대 초 학번들의 대세였다면, 90년대 중반 이후의 졸업생들은 컨설팅 회사에 많이 취직을 했습니다. 컨설팅 회사는 기본적으로 어떤 산업이든 어떤 회사든 바로 바로 이해하고 이슈를 분석하여 대안을 찾을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게 바로 산업공학과 커리큘럼과 상당히 닮아있거든요. 실제로 학교에서 배울 때에도 생산 라인의 문제점을 파악해서 개선한다든가, 물류 네트워크를 효율적으로 짜서 비용 효율성을 높인다든가, 제품 사용성을 높이기 위해 인체 구조를 고민한다든가, 통계적 분석을 활용해 제품의 신뢰성을 높인다든가 하는...아주 다양한 종류의 문제를 두고 '어떻게 하면 최적화 하지?', 혹은 '어떻게 하면 이슈를 해결하지?'라는 주제로 수업을 진행합니다. 때문에 이런 학습이 되어 있고 기질을 습득한 산업공학과 출신은 컨설팅 회사에서 환영을 받기에 충분했죠. 특히나 IMF 이후 미국계 컨설팅사의 국내 시장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수요가 급증했고 많은 수의 산공과 출신들이 이곳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제가 그 케이스이구요.
4. 창업/벤처/스타트업
컨설팅회사 붐이 불던 시기에 저와 유사하게 졸업한 제 선후배들 중에는 유독 벤처 (요즘은 스타트업이라고 주로 부르는..) 기업으로 취업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물론 그때는 지금처럼 취업이 안되어서 그랬다기 보다는 그야말로 호기심과 열정으로 선택한 것이었죠. 일례로 카카오톡의 김범수 의장도 산업공학 출신입니다. 김범수 의장은 80년대 학번이시니 사실 상당히 early bird 셨던 것이구요, 실제로 많은 졸업생들이 이쪽으로 뛰어든건 90년대 학번에 들어서였죠. 창업/벤처는 어떤 면에서는 컨설팅사가 요구하는 기질과 유사한 것을 요구합니다. 굉장한 몰입도로 주어진 미션을 달성해야 하고 다양한 업무를 창업자 혼자서 어느정도 다 처리해야 하는...그래서 벤처기업에서도 역시 산업공학 출신을 꽤 좋아했죠. 저 역시 컨설팅사를 갈때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것이 벤처기업이었습니다.
하지만 벤처기업 안에서의 역할은 또 졸업생 각자의 성향과 비전에 따라 완전히 달랐는데요, 어떤 사람은 개발자로서 코딩 전문가가 되기도 했고, 어떤 분은 초기부터 경영자로서의 자리를 찾았고, 어떤 분은 마케터로, 어떤 분은 디자이너로...산업공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획일적이지 않기 때문에 각자 선택한 길은 그 안에서도 상당히 달랐습니다. (이쯤되면 아, 산업공학 졸업생은 그냥 아무거나 시켜도 되는구나..하는 생각이 드시죠? ㅋㅋㅋ)
5. 온라인/모바일 회사
4번과 사실 내용은 비슷합니다. 다만 굳이 따로 쓴 것은 4번에 비해서는 대기업들이기 때문이죠. 네이버, 카카오, 이베이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온라인/모바일 기업에는 역시 산업공학 출신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이곳에서도 각자의 비전에 따라 정말 다른 부서에서 각자 활동을 하고 있구요.
6. 금융회사 (은행/증권/보험)
여기부터는 조금 낯설 수도 있는데요. 공대생이 왠 금융? 그런데 생각보다 2000년대 학번 들어서 산공과 졸업생들이 금융쪽으로 많이 진출합니다. 물론 취업의 문이 좁아지기 시작한 시점부터 발생한 현상이라서, 어찌보면 안정적인 직장을 찾는 현상이 낳은 결과라고도 볼수 있는데요. 중요한건 아무리 지원을 한다해도 직장에서 안 받아주면 그만이잖아요. 다시말해 금융권에서도 산업공학 출신들을 꽤 받아주더라 라는 겁니다. 아마도 기본적인 공대생으로서의 숫자 감각이 있고, 또 최근에 많은 대학들이 산업공학과 내에서 금융공학/경제성공학 등 금융권과 융합된 학문을 가르치다보니 과거에 비해서는 인식이 많이 달라진 탓일 겁니다. 은행텔러, 은행마케팅, 은행상품개발, 증권 애널리스트, 증권 트레이더, 보험 상품개발 등 아주 다양한 회사에서 졸업생들이 포진되어 있고, 또 본인만의 알고리즘을 개발해서 machine trading을 하는 회사를 창업하는 친구들도 몇몇 있습니다.
7. UX/UI designer
앞서 온라인쪽에서도 살짝 언급했지만, 최근에는 졸업생들 중에 UX/UI쪽으로 전공하고 취업하는 친구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저의 선후배들 중에도 삼성전자 UX담당, 애플 UX담당 등 유수의 기업에서 UX와 UI에 대한 고민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디자인이 사실 artwork에 좀더 무게가 있다면 UX/UI 디자인은 사실 사용자의 사용행태, 습관, 편의성, 심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science에 가깝습니다. 물론 output은 artwork의 형태로 나오겠지만요. 예를들어 우리가 흔히 쓰는 네이버나 카카오 등 온라인 서비스나 스마트폰 등과 같은 제품들은 버트 배치 하나, 화면 색상 하나 그냥 골라서 설계하지 않습니다. 철저한 분석과 행태 조사를 통해서 이루어지죠. 실제로 네이버의 경우도 메인페이지 (주소 치고 들어가면 나오는 첫 화면) 설계시에 사용자들이 첫 화면을 보면 시선이 어디에서 어디로 움직이는지를 시점 분석을 통해 파악하고 이를 통해 검색바 위치, 배너광고 위치, 뉴스판 위치 등을 선정합니다. 이런 과정이 상당히 창의성도 중요하지만 과학적 분석력도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융합적 업무에 역시 산업공학 출신들이 많이 기용되는 것이죠.
8. 경영자
이쯤되면 대략 눈치를 채셨겠죠? 산업공학 출신은 어느 하나에 깊이를 둔다기 보다는 여러 영역을 융합하거나, 혹은 다양한 종류의 업무와 기능을 조율하는 데에 강점을 가집니다. 그러다보니 유명한 경영자들 중에는 산업공학 출신들이 꽤 있습니다. 물론 경영자라는 것이 직업이냐 라고 말하기는 좀 뭐하지만, 상대적으로 경영자의 후보가 되기에 좀더 유리한 조건을 가진건 사실입니다. 여러 지식과 분야에 대한 경험이 있고, 또 적응력도 빠르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9. 심리학자, 경영학자, 수학자 등 이종학계로 진출
앞서 말씀드린대로 학부때, 산업공학의 전공 외에도 다른 전공을 접할 기회가 많다보니 졸업후에 의외의 학계로 진출하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 실제로 제 선후배들 중에는 심리, 경제, 경영, 수학, 의학, 컴퓨터공학, 기계공학, 전자공학 등 인접한 학문 분야로 진출한 친구들이 꽤 있습니다. 그만큼 자유도도 높고 기본기를 갖출 수 있는 시간을 학부때 가지다 보니 학부에서의 여러 학문을 접한 경험을 토대로 진짜 커리어를 찾게 되는 경우라고 봐야겠죠.
10. 소설가, 화가
마지막으로 산업공학과 가장 먼 직업일 것입니다. 실화입니다. 제 친구들 중에는 졸업 후에 소설가가 된 친구도 있고, 화가가 된 친구도 있죠 ㅎㅎ 아마도 저는 이것이 산업공학과가 가르쳐주는 어떤 것 때문이라기 보다는, 본인들이 사실은 이과 전공에 안 맞는데 꾸역 꾸역 대학을 오면서 산업공학이라는 제3지대(?)와 같은 과를 선택했고, 학부 동안 최소한의 졸업을 할 수 있는 수준만 유지한채 뒤늦게 마음에 품고 있던 꿈을 펼친 케이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실제로 두명의 친구들은 모두 과학고 출신이었죠. 어쩌면 진로를 결정하기 너무 이른 나이에 너무 빨리 방향을 정해서 후회했던거 같습니다. 사실 저도 좀 비슷한 면이 있고, 대부분의 제 친구들도 비슷한데요. 산업공학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 나는 완전 100% 공대생 느낌은 아닌데...그렇다고 문과는 왠지 고리타분한거 같고...'하는 경우에 이 과를 선택합니다.
어떠신가요? 의외의 직업들이 꽤 있죠?
산업공학과라는 것이 사실 모든 대학에 있지 않은데다, 졸업생들이 이렇게 색깔이 다양하다보니 실제 업무 현장에서는 산업공학 출신을 만나는게 그리 흔한 일이 아닙니다. 늘 이방인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하죠. 하지만 대학때부터 적응이 되어서 그런지 요즘엔 그냥 혼자 헤쳐가는 삶이 또 재미있기도 합니다. 실제로 저는 컨설팅-온라인/모바일을 거쳐서 이제는 디지털 헬스케어 쪽에서 일을 하니깐요. 그만큼 유연성도 높지만 또 한편으로는 불확실성도 높은 것이 산업공학 출신들의 커리어입니다. "너는 주특기가 뭐야"라고 하면 사실 딱히 할말 없는 그런 전공이죠 ㅎㅎ
산업공학과로의 진학을 꿈꾸는 분들은 스스로가 얼마나 유연하고 자립심이 있는지 한번 되돌아보면 좋을거 같아요. 누군가 정해준 길을 따라가는 직접이 아니라 스스로 헤쳐가고 만들어가고 적응해가야 하는 숙명에 가까우니깐요.
산업공학 출신으로 지금 이직이나 커리어에 대한 고민을 하는 분이라면, 제가 말씀드린 위 10가지의 직업도 살펴보시길 권하지만, 사실 그보다는 더 권해드리고 싶은건, 그냥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아주 엉뚱해도 좋습니다. 산업공학에서 배운게 뭡니까. 뭐 또 닥치면 다 할수 있다 이런거 아니겠습니까? ㅎㅎㅎㅎ
오늘도 여러분의 고민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선배의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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