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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옮기면서 겪었던 일들과 생각들을 남기고 있습니다.

"잠시 통화 가능할까요?"

어느 일요일 새벽, 리차드에게 카톡이 왔다. 7시라 새벽이라고 하긴 좀 어렵기도 하지만, 일요일이라는 걸 감안하면 아주 이른 시간이었다. 일요일 새벽부터 카톡을 주는 걸로 봐서 급한 일이 생겼나 했다. 침대에서 카톡을 보고, 작은 방으로 가서 전화를 걸었다.

최근에 옮긴 회사에서 시작한 HR 관련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였다. 1년간 계약을 맺고 꽤 큰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했는데, HR 경험이 없어서 잘 진행할 수 있을지 고민된다는 내용이었다. 일요일 새벽부터 연락 왔기에 '대단한 일인 줄 알았는데, 별 일 아니었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나도 스타트업 경험이 없어서 정확히 조언을 해주기 어려우니 주변에 경험이 있는 사람을 한번 수소문해보겠다고 마무리하려 했다. 그제야 일요일 새벽에 전화한 진짜 이유를 이야기했다.

"아뇨, 다른 사람이 아니라 성환님이 와주셨으면 좋겠어요. 더 나은 회사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하셨죠? 저희 회사에서 한번 해보시죠, 하고 싶은데로 할 수 있도록 도와드릴게요"

훅 들어왔다.


당시 리차드와 몇 차례 만나면서, 서로 간을 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나의, '대기업 팀장이지만 생각이 유연하고, 좋은 조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끌렸을 것이다. 다만 회사에서 인정받고 있고, 현 회사를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말에 회사를 옮기기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나도 스타트업에 관심이 있었지만, 처우 등에 있어서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면서 옮기고 싶은 배포는 없었다. 당장은 아니겠지만, 언젠가 기회가 생길지 모르니 슬쩍 발이나 담가놓았던 상태였다.

전화를 끊고 머리가 복잡해졌다. 처음에는 황당했다.

‘대기업 팀장이고 잘 나가고 있는데, 40명도 안 되는 스타트업에 입사하라고? 말도 안 되는 제안이잖아’하며 외면했다. 계속 외면하려고 해도 귓가에서 맴도는 모기처럼 신경이 쓰였다. ‘그래도 이런 제안도 받고, 내가 매력적이긴 한가보다’하며 기분이 좋은 건 사실이었다.

아내가 깰까 봐 안방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작은 방과 거실을 서성이는데, 아내가 일어나 무슨 일 있냐고 물었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아내도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어느새 그 회사를 검색하고 유튜브에 있는 회사 대표의 인터뷰를 보고, 페이스북의 대표의 담벼락을 보고 있었다. 마침 회사 대표의 ‘페북 친구’ 중에 고등학교 절친 ‘K’가 있었다. 일요일 아침부터 그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그 회사와 대표에 대해서 묻고,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그 회사 나름 업계에서 인정받고 있어. 이 업계에 소위 ‘사짜’가 많은데 그 대표는 진정성 있게 일하는 걸로 알고 있어.
성환아, 네가 가지고 있는 것들 다 내려놓을 수 있으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근데 내려놓을 수 있겠어?”


월요일에 출근해서도 머리가 복잡했다. 회사일이 전혀 집중이 되지 않았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안 될 것 같아서 리차드에게 전화해서 만나자 했다. 그는 퇴근 무렵에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 마침 스타트업의 진짜 모습을 보고 싶었기에 흔쾌히 가겠다고 했다. 뒤숭숭한 마음으로 스타트업 사무실을 방문했다.

리차드와 대표가 반겨주었다. 한 시간 정도를 셋이서 이야기하다, 리차드는 다른 미팅이 있어서 대표와 단 둘이 한 시간을 더 이야기했다. 서로에 대해서 궁금한 점을 묻고 대답했다. 대표는 듣던 데로 진정성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오랜 기간 사업을 하며 많은 사람을 만나서 그런지 상대의 마음을 잘 읽는 듯했다.

“성환님, 아마 리차드가 제안하기 전부터 흔들리고 있었을 것 같아요. 리차드가 흔든 게 아닐 거예요. 성환님이 왜 흔들렸는지, 그 근원을 찾아야 할 거예요. 무엇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 사람인지를요”


그는 알면서도 알 수 없는 듯한 말을 남겼다.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다. 집으로 돌아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가고 싶은 이유’와 ‘남고 싶은 이유’를 하나하나 메모해보았다. 남고 싶은 이유가 더 많았다. 현 직장에서 쌓아놓은 신뢰도 있었고, 연봉이나 처우도 있었지만 가장 큰 건 불안함이었다. 나를 포장해주는 대기업 껍데기를 걷어내면, 내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다. 그것을 마주하기 두려웠다.

다시 주말이 되었고, 더 이상 고민하기 싫었다. 나 자신의 두려움을 계속 마주하는 게 힘들었다. 아내와 마지막으로 이야기하며 끝내려 했다. 그런데 아내가 정리해주었다.

"여보, 한 직장에 들어가서 그 회사에서 임원이 되거나 정년퇴직하는 것도 영광일 수 있어.
근데 난... 여보가 그렇게 된다면, 안쓰러울 것 같았어. 나중에 퇴직을 하게 됐을 때, 오로지 여보의 세계관은 한 회사에만 머무는 거잖아.
그리고 여보, 그거 모르지? 일주일 동안 여보 표정. 그 회사 이야기할 때 표정이 달랐어.
걱정하지 마, 이직해도 돼."


다음날 아침, 월요일 8시에 리차드에게 전화를 했다.

“저 갑니다. 낙장불입이니, 대표에게 마지막 확인해주세요. 대표님 오케이 하면 오늘 회사에 통보합니다.”

5분 만에 다시 전화 왔다. 그렇게 스타트업으로 흘러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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