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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직장 생활을 통틀어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꼽자면, B팀장의 팀원으로 일했던 때다. 그가 사무실을 향해 걸어 들어올 때면, 타박타박거리는 특유의 구둣발 소리가 유리문과 복도를 뚫고 귓가를 때린다 느낄 정도로, 신경쇠약을 앓았더랬다. 사람이 사람으로 인해 이렇게까지 괴로울 수도 있구나를 매일 온몸과 마음으로 깨달아야 했던 시절이었다.

당시 나와 친했던 친구들 모두가 B팀장의 존재를 알았다. 일면식은 없지만, 그가 내게 했던 한 마디 한 마디가, 했던 행동 하나하나가 고스란히 우리의 술자리 씹을 거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에게 토로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기에, 그는 불금 밤마다 참 오지게도 씹혔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항상 메인 안주가 될 수 있었느냐? 그건 또 아니다. 친구1의 팀장, 친구2의 팀장, 친구3의 팀장... 이들 모두가 오늘 밤 씹힐 거리 나야 나 하며 치열하게 경쟁해 주었기에, 다른 근은 몰라도 저작근 손실만큼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유독 내 주변 사람들만 나쁜 팀장을 만난다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고, 이쯤 되니 '세상에 나쁜 팀장이 너무 많은 건 아닌가’ 싶다. 대체 왜일까? 세상에 나쁜 팀장은 왜 이리도 많은 걸까?

물론 팀장과 팀원이라는 관계성이 깔리면, '좋은'은 고사하고 '나쁘지 않은' 사이조차 되기 힘든 탓이 있을 거다. 옆 자리 동료가 해주면 고맙게 여길 조언도, 팀장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고나리질로 느껴질 수 있다. 팀장의 역할 속에는 지시 내기리, 통제하고 관리하기, 능력과 태도를 평가하기가 포함되어 있고, 그 대상은 '나'다. 지시자이자 통제자, 동시에 평가자인 팀장을 편하게 느끼기란 쉽지 않고, 그렇기에 팀원 일방의 시각에서만큼은 분명 불평등하고 불편한 관계성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이 현상을 특수한 관계성이 부른 자연스러운 부산물로만 치부하려니 영 석연치가 않다. 그보다 훨씬 고질적이고 본질적인 원인이 있을 것만 같은 거다. 아니나 다를까, 직장인 짬바가 차오르면서부터 '나쁜 팀장'을 양산해내는 조직의 구조적 문제를 자꾸 발견하게 된다.

일단, 자질 없는 사람이 팀장 자리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 보수적인 회사에 다니고 있어서 더 그렇게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느낀 팀장이라는 직책은, 연차가 쌓이고 임원들에게 밉보이지 않으면 차지할 수 있으며, 차지한 자가 임원에 오르거나 퇴사하지 않는 한은 다른 이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때문에, 아무리 개인 기량이 뛰어나도, 팀을 이끌만한 리더십과 통찰력을 갖추고 있어도, 팀 내에 그보다 연장자나 높은 연차가 있으면 팀장이 되기 어렵다. ‘나이와 경험’이 반드시 '역량과 리더십'과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당연한 명제를 인사권자들만 모르는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자질 없이 팀장이 된 사람들이 '좋은 팀장'이 되기 위한 학습이나 노력을 하는 것 같지도 않다. 팀장이라는 자리를 새롭게 주어진 역할이나 임무로 보기보다는, 스스로가 따낸 포상이자 권력으로 보는 탓일 거다. 꼭 그렇게까지 여기지 않는다 하더라도, 막연하게 '잘하면 된다' 여길 뿐, 팀의 리더로서 감당해야 할 책무가 무엇인지, 그걸 다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지를 딱히 알려하지 않는 것 같다.

구조적 문제로 인한 현상은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개선되지 않을 것이고, 때문에 앞으로도 나쁜 팀장이 끊임없이 양산될 거라는 비관적 전망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쏟아지는 나쁜 팀장들 중 하나가 나에게 당첨됐을 때,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

이에 대한 답은 나의 경험담으로 대신하려 한다. 부끄럽지만 나는 B팀장과 헤어질 결심을 하는 데 4년 남짓한 시간이 걸렸다. 이직 시장의 매서움이, 사람이 주는 스트레스 못지않다는 걸 알기에, 쉽게 용기가 나지 않았다. 괴로움이 좀 덜한 날이면 '새로 만나는 팀장이 이보다 더 나을 거란 보장도 없지 않나?'라는 비겁한 합리화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또 다른 하루를 버틸 힘을 짜내 보기도 했다. 그렇게 존버로 연명하던 어느 날, 정말 이대로 가다간 인간으로서 최후의 존엄마저 잃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제야 비로소 퇴사 의사 표명을 할 수 있었다.

그는 그 즉시 서둘러 나의 퇴사를 처리하려 했다. 행동이 그렇게 잰 사람인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본인 때문에 그만둔다는 게 알려질까 겁이 난 듯했다. 옹졸한 그 모습을 보며, 더 빨리 이별을 결심하지 못한 것에 후회가 밀려왔다. 그런데 진짜는 후회는 그 후에 왔다. 퇴근 후 이력서를 작성하는 내내 회한의 눈물이 앞을 가렸던 것. 아니 아무리 그래도 무려 4년이라는 세월인데, 이력서에 써낼만한 제대로 된 업무 경력이나 프로젝트 성과가 한 개도 없다니. 난 대체 뭘 해온 걸까?

B팀장은 평소 팀의 주요한 프로젝트는 본인이 직접 맡아 진행했고, 팀원들에게 참여의 기회는커녕 공유조차 하지 않았다. 관련한 페이퍼워크나 허드렛일을 시키는 경우는 있었지만, 그마저도 피드백을 제대로 안 해주니, 내 자료가 어디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렇다고 팀장이 맡은 프로젝트가 대단한 거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윗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허울만 그럴싸한, 알맹이는 없는 일들이었다. 실무자의 역량이라는 게 상사가 주는 기회와 피드백을 양분 삼아 성장하기 마련인데, 그간 쓰레기 같은 일감과 그지 같은 피드백만 받아먹었더니, 역량 대신 물경력이 자란 거다.

존버 끝에 남는 게 너덜너덜한 멘탈과 자존감, 물경력뿐이라는데, 당장 나쁜 팀장을 떠나야 할 이보다 큰 이유가 있을까?

단, '나를 힘들게 하는 팀장'이라고 해서 꼭 '나쁜 팀장'은 아님을 알아 두어야 한다. 합당한 이유와 목적, 온당한 방법과 수준으로 지시/통제/평가하는 것마저 나쁘다고 여긴다면, 그건 그냥 남 밑에서 일하는 게 잘 안 맞는 것일 수 있다.

또한, 당장은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성장 가능성과 의지가 있어 곧 좋은 리더가 될 팀장도 있을 거고, 그에 반해 교묘하게 좋은 사람으로 위장하고 있으나 실상은 세상 나쁜 팀장인 경우도 있으니, 구별을 잘해야 낭패가 없다.

나쁜 팀장과 좋은 팀장을 가르는 기준은 여러 가지일 테지만, 나의 경우, 팀장이 무엇을 더 중하게 여기는지를 눈여겨본다. 팀과 팀원의 성장보다 본인의 안위나 성과, 명예나 자존심을 중시한다면 빼박 나쁜 팀장이다. 팀원을 함께 일하는 동료가 아닌, 소모품으로 여길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 이런 팀장 밑에서는 일을 암만 잘해도 그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이나 기회를 기대하기 힘들다.

이런 팀장 앞에 일 잘하고 말 잘 듣는 팀원이 나타난다? 그럼 바로 호구 포지셔닝이다. 팀장은 호구의 능력과 역량을 쪽쪽 빨아 자기 성과로 챙긴다. 자기 챙길 거 다 챙기고 나면, 남는 부스러기 조금 던져 주며 보상이랍시고 생색내는 경우가 있는데, 그마저도 호구를 오래 품고 있기 위한 빅피쳐일 뿐이다. 만약, 일은 잘하는데 말은 좀 안 듣는, 할 말은 하는 타입의 팀원이 나타난다면? 이번엔 경쟁자 포지셔닝에 놓인다. 드럽고 티 안나는 일만 줄줄이 주며 팀원이 돋보일 기회를 원천 봉쇄시킨다. 물론 이런 류의 인간이 '나에게 팀원은 호구 아니면 경쟁자'라고 스스로 말하고 다니지는 않는다. 팀장에게 팀원을 고르는 안목이 필요하듯, 팀원에게도 팀장을 걸러내는 냉철한 안목이 필요하다.

이만 줄여 보자면,,

세상에 나쁜 팀장은 많고, 지금도 회사는 나쁜 팀장을 양산해 내고 있다. 나쁜 팀장과 함께하면 마음과 정신에 병이 깃드는 건 물론이오, 물경력까지 덤으로 얻는다. 그러니까 우리는, 나쁜 팀장을 구별해내는 기준과 안목을 길러야만 한다. 관계성이나 위장에 속아 오판하지 말지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한 것, 혹여 지금 나쁜 팀장과 함께하고 있다면 당장 그곳을 떠나자. 나쁜 팀장에게 저당 잡히기에 우리의 커리어는 너무도 소중하고 갈 길이 멀다.

아, B팀장과 헤어진 그 후, 나는 아주 좋은 팀장을 만나 지금도 무럭무럭 성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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