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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져서 뭐하나 싶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내가 시대에 뒤쳐진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왜 그리 재고 또 재는데 열중하는지 알 수가 없다. ‘가시적인’ 사랑을 뽐내기 위해 생성된 ‘가식적인’ 이미지는 어느새 ‘진실’마저 삼켜버렸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그 사람을 사랑하고 또 미워했는가. 그놈의 이유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것일까. 그저 남들 눈에 ‘그럴 듯 해 보이는’ 표면에만 목을 매는 것 같다. 참으로 웃긴 현상이다. 그럴듯해 보인다는 말은 그 뜻 그대로 실체가 없다는 것 아닌가.

 

요즘은 누군가를 소개받을 때도 소위 어느 정도 수준의 지적 혹은 경제적 능력을 가졌는지, 그럭저럭 봐줄 만한 차 혹은 집이 있는지, 적당한 키와 몸무게인지를 필수적으로 따진 다음에야 비로소 ‘첫 만남’이 성사되는 것 같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서 순수와 낭만이 결여된 것은 아니나, 적어도 그런 것들이 마지막으로 남아있게 되는 연령대가 점차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과 마침내 나조차도 그러한 기조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현실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익숙해지다 못해 더욱 적극적으로 이 것 저 것을 따지고 있는 내 모습이 포착될 때면, 그것만큼 또 슬프고 자조적일 수가 없다. 가벼운 실소처럼 뭔가 아주 중요한 정서가 픽- 하고 갑자기 사라진 것만 같은.

 

누군가 아주 괜찮은 사람이 있다며 소개라도 해줄라치면, ‘그 사람 영화는 좋아하니? 재즈나 힙합은? 여행은, 패션엔 관심 많고? 키는 어느 정도야?’ 속사포 랩 하듯 희망사항을 줄줄이 늘어놓는 것이다. 더 웃긴 사실은, 이 모든 관문을 무사히 통과한 이후에 받아 본 사진 한 장이 ‘별로다’ 싶으면 어쭙잖게 또 망설여진다는 것인데 그러면서 속으로는 ‘나는 정말로 진실한, 그야말로 영혼이 교감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을 위해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 거야’되뇌이며 말도 안 되는 자기 합리화의 덫에 걸려버린다.

 

몇 번의 ‘가시적인’ 만남을 직접 경험한 이후로는, 비로소 어느 정도 그간의 틀로부터 해방된 것 같다. 불필요한 따짐도 포함하여. 그리하여 언젠가부터 남자든 여자든 나이가 많든 적든 누군가를 만날 때는 ‘겉’으로 ‘안’을 섣불리 규정하지 않으려 한다. 느릿하고 깊은 대화를 충분히 나누고 나서야 ‘상대방의 안’을 조심스럽게 ‘짐작’ 정도 해 볼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여기는 것이다. 그러다가 비로소 ‘조건 따위 개나 줘도 될 것 같이’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확신이 서기 시작하면 그토록 오랫동안 숨겨두었던 ‘진심’을 푹 우려내는 것이다. 대체로 그러한 만남은, 이별이 찾아오지 않거나 찾아오더라도 아주 늦게 올 것이 분명하다.

 

그나저나, 내가 지나쳐 간 과거 속에 그런 사람이 있었는지 모르겠네. 아마 있었을 것인데, 그때도 나는 무언가를 따지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후, 이제는 정말 그러지 않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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