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런 한 방을 위해 날린 200번의 헛스윙

By 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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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나는 더 나이 먹기 전에 외국에서 일하고 살아보고 싶었다. 정말 그 생각밖에 없었다. 일에 대한 목표나 비전, 하다 못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대략적인 그림도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 사실은 여전히 고민이지만, 어쨌든 당시의 나는 내 마음을 이끄는 것을 따라가다 보면 뭔가 근사한 꿈이란 녀석이 나타나지 않을까 기대를 갖고 있었다.

 

"한국 회사는 가지 않겠어요."

아무리 비전과 생각 없이 왔다고 해도 몇 가지 규칙은 있었다.

한국 회사는 NONO. 

나를 포함해 국적이 다른 사람이 5명은 있는 곳. 

한국 출장의 기회가 있는 곳

무역/포워딩 분야

(지금 보니 너무 유치해서 적을까 말까 고민했다..) 웬만하면 유연하게 생각하던 나도 단 한 가지는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 바로 첫 번째, 한국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삶의 가치 중 하나는 '다양한 경험'이다. 취직하는 게 중요하지만, 다양한 경험은 그때도 내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였다. 통장이 텅장이 되어 가고 불법 아르바이트를 하는 처지가 되었음에도 경제적인 이유로 나의 마지노선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한국에서 태어나 공부하고 살고 일도 해 봤는데 여기까지 와서 굳이 한국 회사를 다녀야 하나? 싶었다.

 

사실 싱가포르에서 엔트리 레벨, 주니어 직군의 연봉은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나도 한국에서 2년 정도 일한 경력이 전부라 높은 연봉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이에 비해 한국 회사에 들어가면 동 포지션 대비 높은 연봉을 받는다. 한국인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외국에 나와 사는 사람을 배려하는 차원으로도 돈을 더 주는 편이기 때문이다.(고국을 떠나온 구직자에게 정말 매력적인 조건이다.)

 

싱가포르에 온 지 6개월 후 겨우 취직했으나 그 회사를 한 달 반 만에 나오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재취업을 하기까지 10개월이 걸렸다. 그 마지막 10개월에 내게 오퍼를 준 회사 중 한 곳은 더 높은 연봉을 주는 한국 회사였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다른 자리에 비해 25~30% 정도 높았던 것 같다. 흔들리지 않은 건 아니지만 결국 현지 회사를 선택했다.

 


“이제 일자리가 점점 줄고 있는데, 좀 더 일찍 오지.”

9월에 싱가포르에 갔다. 헤드헌터들이 가끔 내게 말할 때마다 나를 몇 달간 붙잡고 있었던 이전 회사를 애꿎게 원망하기도 했다.(참고로 싱가포르의 구직시장 피크 시즌은 3~10월) 무슨 배짱인지 영문이력서도 싱가포르에 도착하고 나서야 만들기 시작했다. 아무튼 도착하고 나서 부랴부랴 만든 레주메로 내게 처음 면접 기회를 준 회사는 DHL이었다. DHL이라니! 이름만 다 대면 아는 독일의 글로벌 기업 아닌가! 게다가 내가 관심 있는 포워딩과 관련 있는 곳이었다! 난 ‘예상 면접 답변’을 달달 외워갔다.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당시 면접 과정에는 간단한 영어시험도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을까? 당연히! 똑 떨어졌다. 그렇게 나는 지원의 대장정에 들어갔다. 아침에 일어나 구직 사이트에서 "Korean", "Customer service", "Logistics" 등의 키워드를 넣고, 레주메를 뿌리는 게 내가 매일 하는 일이었다. 다행히 매주 적어도 한 군데 회사에서 면접은 보고 있었다. 그 당시 정말 신기했던 건 한국에서는 그렇게 나를 물 먹였던 대기업을 넘어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글로벌 기업들에서 나를 보고 싶어 하는 점이었다. 그렇게 그들과 연락하고 사무실을 들락거리면서 해외취업은 정말 포기하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이 아닌 유일한 분야인 구직에서 나는 절망적인 무소식의 늪에 빠져 있었다. 그렇게 지원, 면접, 무소식, 다시 면접의 루프를 반복했다.

 ‘혹시 이 되지도 않는 꿈이 나를 말려 죽이는 게 아닐까?’

아무것도 안 하거나 가만히 있으면 정말 패배자가 되고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 같아 매일 도서관에 출근하고 도서관이 문 닫는 시간에 나왔다. 아침에 온 Job 사이트를 뒤지고 지원한 후에는 영어 공부와 면접 준비를 했다. 약 삼사십 개의 예상 질문을 만들어 놓고 그에 대한 답변을 열심히 준비하고 달달 외웠다. 그렇게 하지 않은 날은 하루를 낭비한 것 같아 괴로웠다. 

 

한국에서도 백수 생활을 한 적은 있지만 외국에서 이러고 있으니 정신이 피폐해져 갔다. 거기에 불안정한 비자와 떨어져 가는 돈 걱정까지 항상 불안했다. 그런 생활 속에서 내가 활동한 몇 가지 이벤트들이 있었다. 그 이벤트에 가끔씩 가는 것으로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지구에 대한 소속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

 

1)     Job fair 행사 - 더이상 설명은 필요 없는. :)

 

2)     봉사활동

가끔씩 한인회에서 한인 체육대회 같은 이벤트의 봉사자를 모집하곤 한다. 이때 봉사활동에 참여하며 그분들과 친분을 쌓고 일자리를 소개받는 경우도 있었다.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매일 면접에 떨어진 소식을 들으며 우울한 이때 같은 나라 사람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될 때가 많다. 이런 활동을 몇 번하다가 한인회 분들과 친해진 것도 덤이었다. 

 

인맥, 구직을 떠나서도 나는 매년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에서 봉사활동을 하거나 요양원에 봉사활동을 다녔다. 개인적으로 봉사활동을 추천하는 편인데 ‘내가 어딘가에 도움이 된다.’는 느낌 때문이다. 셀 수 없이 거절당하는 나 같은 사람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그 느낌은 내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준다. 순수하지 않은 마음이라고 욕먹어도 할 수 없지만 그 시간을 통해 오히려 내가 도움받고 위로 얻은 게 사실이다. 그리고 그 봉사활동에서 만난 친구들이 그 어떤 모임에서 만난 친구들보다 순수하고 이타적인 사람들이 많았던 거다. 그 활동을 통해 만난 친구들과 친분을 유지하고, 이사할 때도 도와주는 등 정말 감사한 일이 많이 생겼다. 인생이라는 게 정말 묘한 것이 이때 봉사 활동했던 경험이 나중에 호주에서 일할 때 도움이 되기도 했다. (역시 모든 건 다 쓸모가 있단 말인가?)

 

3)     스터디나 동아리 (언어 교환, 동창회 등)

스터디나 동아리 활동도 본인의 실력과 관심사 그리고 네트워크를 넓힐 수 있는 활동이다. 사실 나는 스터디에서 알게 된 사람을 통해 이직을 한 적이 있다. 당시 다니던 회사에서 더 이상 도전의식을 받지 못하고, 다른 일이 하고 싶어 눈에 아른거리던 나는 함께 스터디를 하는 사람이 소개해준 회사에서 면접을 보는 행운을 얻게 됐다.(물론 그것이 행운이었는지 모르겠다만.) 이직할 당시 나는 이력서를 내거나 Job 사이트를 기웃거린 적이 없었다.

스터디나 동아리 활동을 하다 보면 이런 사례를 종종 볼 수 있다. 꼭 돈이 없어도 참여할 수 있는 스터디나 동아리 활동(여행, 운동 등)이 많다. 자신의 관심사에 맞는 모임에 참석하며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거나 네트워킹을 하는 것도 추천하고 싶다. 그 외에도 싱가포르에는 한국의 대학교별 동창회도 잘 운영되고 있는 편이다. 본인이 졸업한 대학교의 싱가포르 동창회에 참석하는 것도 분명 위에 언급한 도움이 될 것이다.

 



* 좋은 기회가 생겨서 지난 6월 한경 리크루트에서 인터뷰했어요.

http://www.hkrecrui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192

 

에세이처럼 쓰는 글이라 'how to' 형식은 최대한 배제하려고 합니다. 혹시나 구직 정보가 필요하신 분들은 제가 예전에 썼던 글을 참고해 주세요.

싱가포르 취업을 위한 구직 사이트 총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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