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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낯선 푸른 행성에 제대로 불시착한 문돌이

 

어릴 적 난 아이폰을 탄생시킨 스티브 잡스에 매료되어 ‘나도 저런 CEO가 되어야지’라는 생각을 갖고 문돌이 행성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학생 때는 ‘경영학과를 나와도 IT나 제조업 분야의 사업기획, 전략기획’을 할 수 있겠구나. 스티브 잡스처럼!‘, 이라는 믿음이 강했다. 거기에 약간의 공돌이 행성의 지식을 얹으면 엄청난 경쟁력을 가지고 큰 사업을 하는 행성에서 활약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문돌이 친구들과는 조금 다르게 이공계 지식을 쌓는 데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처음 반 정도는 내 생각이 맞았다. 큰 사업을 하는 행성들에 취업하는 과정에서 경영학 + 약간의 이공계 지식 보유자는 경쟁력 있었고 많은 행성들에 합격해 원하는 곳을 선택할 기회가 주어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가장 가고 싶었던 행성까지 가기에는 연료가 부족해서 목표 행성까지 가는 중간에 가장 가까이 있던 푸른 행성(삼성)에 잠시 불시착하게 되었다. 비록 불시착이었지만, 이전까지 여러 다른 행성들에서의 경험, 경영학 베이스, 그리고 약간이지만 가지고 있었던 이공계 지식만 있으면 문제없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오만이었고 너무도 낯선 환경은 내 멘탈을 완전히 부셔버렸다.    

 

푸른 행성은 첨단 기술, 첨단 제조업 회사였고 이런 회사에서 사용하는 기술과 지식은 문돌이 수준에서 알 수 있는 것이 애초에 아니었다. 일을 시작하기 앞서 받는 기본 교육 때, 내가 아는 이공계의 지식이 얼마나 별 것 아니었는지, 내 자신감이 얼마나 오만이었는지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다.(지금 생각하면 기껏해야 뉴스나 기업 블로그에 나온 정도의 기술 수준만 알고 있었는데 무슨 자신감으로 기술을 안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본격적으로 교육을 받기 시작하자 ‘아, 이건 내 이해 수준을 훨씬 초과하는구나’하는 절망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내 마음속에서는 이곳에서의 삶에 대한 자신보다는 의심이, 정착보다는 탈출이 더 크게 자리 잡게 되었다.

 

 

직무 분명 경영학과 직무인데... 할 수 있는 것이 없네?

 

경영학과를 나온 문돌이들이 푸른 행성에서 선택할 수 있는 직무는 별로 없다. 인사, 회계, 전략, 마케팅 등이 있는데, 몇 개 없는 선택지 중에서 그나마 다행히 내가 원했던, 그리고 대학 때부터 줄곳 생각했던 직무인 경영전략 직무를 배정받게 되었다. 대학 생활 내내 준비했던 직무이고 각종 사업기획 공모전, 인턴 등을 통해 간접 경험을 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거기에 살짝 더해 이공계 지식까지 무장했으니 직무 투입이 두렵기보다는 설레었고 내가 뭔가 대단한 걸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설령 낯설고 어려운 기술을 다루는 곳이라고 해도 문제없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경영전략, 학교에서 맨날 했던 건데 회사라고 뭐 다르겠어? 어?! 완전 다르네..

 

하지만 현실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 너무도 달랐다. 첨단 기술을 다루는 푸른 행성에서의 경영 전략은 많은 부분 기술을 기반으로 이뤄졌고 이미 내 이해의 범주를 한참 넘어섰던 기술들을 가지고 학교에서 배운 경영 전략으로 풀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이해의 범주를 넘어서는 기술 이야기들에 전혀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슨 말인지 모르는 이야기로 이뤄진 회의는 듣기 싫은 강의를 듣는 것만큼 지루하고 힘들었다. 처음 몇 달은 회의 내용을 듣는 것보다 잠과 싸우는 것이 더 힘들 정도였다. 거기에 더 해 하는 일의 많은 부분이 학교에서 배운 문과적 지식이나 경영학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것 같이 느껴졌다. 이런 상황이 되자 한껏 부풀었던 기대감은 쪼그라 들었고 불안감이 점점 자라나기 시작했다.

 

이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야. 역시 난 여기 불시착한 거야

 

그때부터 난 푸른 행성의 낯설고 적응되지 않는 환경을 떠나 더 나은 곳으로 떠날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솔직하게 말해, 더 나은 곳을 향해 가는 도약이 아닌, 적응하지 못해 도망치는 도피를 목표로 하게 되었다. 마음이 이미 떠버리자 푸른 행성에 남아 있는 1분 1초가 너무 아깝게 느껴졌고 하루하루가 지루하고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내 우주선에 연료를 채워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여기서 연료는 이직을 위한 자소서에 쓸 경력, 스펙과 혹시나 백수 생활을 하게 될 경우에 버틸 자금을 의미한다)

 

 

낯선 외계 행성을 탈출하고 싶어요

 

푸른 행성에 불시착한 후, 떠날 연료가 충분해질 때까지 기다리기만 했던 생활은 정말이지 지루하고 힘들었다. ‘어차피 다른 곳으로 가면 필요도 없는 거 내가 왜 열심히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자 모든 일에 집중이 되지 않았고 대충 시간만 채우고, 틈이 나면 다른 공부나 이직 준비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강해져 도무지 회사 일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자연히 퍼포먼스는 떨어졌고 스트레스 지수는 폭발했다. 낯선 외계 행성에서의 적응은 실패했고 탈출만이 정답이라 생각했다.

 

다른 행성으로 이직할 거야... 여기서는 하루도 더 못 버틸 것 같아

 

그렇게 내 첫 정규직이었던 회사로부터 도피를 준비하고 때, 우연히 한 선배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그 대화이자 일종의 멘토링이 내게 있어 커다란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난 아직 푸른 행성에 남아 있지만 더 이상 이전처럼 고통받지도, 지루하지도 않은 나날을 보내고 있고 더 큰 목표를 가지고 버틸 수 있게 되었다. 모두 선배의 지나칠 정도로? 현실적인 조언 덕분이었는데 그건 다음 편에서 이어 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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