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중동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쿠웨이트에도 스산한 겨울이 찾아왔다.
난방이 안 되는 집에서 지낸 이유로 생긴 감기 기운 탓인지,
아니면 해가 바뀐 이유에서인지,
혹은 마침 구정 같은 민족대 명절날에도
한국에서 가족들과 함께 있을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는지,
예년과 사뭇 다르게 다소 가라앉은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했다.
이곳에 온지도 2년 차에 접어들었다.
힘들었던 당시의 매 순간마다 시간이 너무나 더디게 흐르는 것 같이 느껴졌음이 분명한데
이제와 새삼스럽게 돌이켜보면 1년이라는 시간은 이미 훌쩍 흘러가 있구나.
지난 한 해는, 즐거웠던 순간들보다 힘든 순간들이 많았고,
그로 인해 내게 더 많은 것이 남았던 한 해였음을 부정하지 않겠다.
처음 브런치에 문을 두드린 이유는,
나와 같은 여자 엔지니어들이, 혹은 남들과 다른 좀 더 새로운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들이
나의 글을 보면서 스스로 나아갈 방향을 찾고 도전을 하는데 주저하지 않도록
그들에게 색다른 방향을 제시해주는 GPS 정도의 도움이 되길 바랐다.
어찌 보면 아주 전형적인 틀에만 갇혀 살아온 나도 할 수 있는 것을,
당신들도 못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라는,
어쩌면 희망 내지는 용기를 일깨워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혹자는 내게 독하다 말한다.
그 말이 썩 좋은 표현은 아닌 것을 알지만,
나는 그 말에 어느 정도 인정을 한다.
독한 사람은 절대 포기가 없다.
독하다는 것은 그만큼 주어진 업무에 대해 끈기 있게 마무리를 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업무적으로 볼 때 상사의 신뢰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 끈기 자체는 칭찬받아야 맞다.
그리고, 이제는 스스로도 그 말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내가 해낸 것들을 해내지 못한 다른 핑계의 일환으로 나오는 일종의 부러움이라 여기고 만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10배 잘나면 그를 헐뜯고,
100배가 되면 두려워하며,
1000배가 되면 고용당하고,
10000배가 되면 그의 노예가 된다.
- 사마천의 사기 화식열전 중에서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남자아이처럼 자랐다.
나는 2녀 중 차녀였기에 당시 나의 부모님은 내가 아들이기를 바라셨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기억하는 어렸을 때 나의 모습은 온통,
짧은 커트머리에 멜빵바지, 늘 남자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그 탓에 나 스스로도 가족 내에서 아들 역할을 대신해내야겠다는
의무 아닌 의무감이 늘 마음 한켠에 있었던 거 같다.
진학을 할 때에도, 나는 별다른 고민 없이 공대를 선택했고,
부모님의 기대에 발맞추기 위해, 첫 직장 역시 남들이 모두 입사를 갈망하는 삼성으로 입사했었다.
당시엔, 나의 생각과 결정보다는 남들이 맞다는 것, 남들의 선택을 좇으려 했던 거 같다.
결국 나 자신보다는, 남들의 선택을 더 믿고 신뢰해왔다.
그때의 나는 나 스스로를 믿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던 거 같다.
그럭저럭 별다른 노력 없이, 별 탈없이 순조롭게 나의 커리어의 첫 페이지를 써나 갈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기가 막히게 맞아 들었던 나의 운과 타이밍의 하모니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생은, 늘 운과 타이밍이 내 맘대로 되어 주지 않기에
어느 순간 실패의 순간이 반드시 찾아오게 된다.
별다른 노력 없이 무난하게 살아왔기에,
스스로도 실패 혹은 난관이라는 것을 겪어 보지 못했기에
처음 닥치는 난관을 마주할 때 비로소, 인생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님을 새삼 깨닫고,
지금까지의 최선을 다해 살아오지 않은 것에 대해 스스로 후회하고 순간이 찾아온다.
그러한 난관에 부딪혀보고 나서야 비로소, 스스로를 믿기 시작한다
아니, 스스로를 믿을 수밖에 없게 되는 순간이 온다.
스스로 믿고 내리는 그 결정이 그것이 희망에 부푼 소망뿐일 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절실해지고, 간절해지며
그때 처음, 스스로의 가능성을 절실히 믿기 시작한다.
내가 믿는 나의 잠재력, 나의 가능성이 얼마나 많은 것을 내재하고 있는지,
믿음이라는 뿌리가 주는 그 견고함이 수많은 난관 속에서 나로 하여금 어떻게 지탱하게 만드는지
나는 지난 1년의 경험 속에서 그것을 체감했다.
스스로 믿음이 쌓이는 순간,
두려움은 이내 가능성, 잠재력으로 바뀌고
더 이상 나는 못할 것이 없어진다.
외국인과 영어로 말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면,
오늘 당장 길 가다 우연히 만난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하는 것을 시작으로 "시도"해보자.
그것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다 보면 오늘보다 내일, 내일보다 그다음 날,
불편했던 처음의 마음, 두려움 자체가 나도 모르는 사이 어느 순간 놀라우리만큼 걷혀 있을 것이다.
이제껏 남들 앞에 서는 것이 두려웠다면,
두렵다고 마냥 피하지 말고, 지금 당장 가까운 친구들 앞에서 서는 것을 시작으로 "시도"해보라.
처음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을 만큼 창피하게 느껴졌던 마음도,
지속적으로 남들 앞에 나서다 보면 이내 편안해지고 자신감이 붙을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내게 주어진 업무 중 가장 두려웠던 일이 남들 앞에서 영어로 프레젠테이션 하는 것이었다면,
그것을 꾸준히 그리고 반복적으로 연습하고 빈번하게 남들 앞에 나서다 보니,
아주 뛰어나다고는 말할 수 없어도 내 안에 머물었던 긴장감, 두려움은 어느 순간 사라지고,
스스로도 말하는 것에 자신감이 생겨 여러 사람 앞에서도 떨지 않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내가 보였다.
무엇이든 처음엔 잘하든 못하든 "하는 것", 그 시도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좋다.
늘 처음 발을 내딛는 것이 힘들 뿐, 반복하다 보면 습관이 되고,
그렇게나 두려웠던 것들도 이내 아무것도 아닌 것, 별것도 아닌 것이 된다.
스스로를 믿고 무엇이든 시도하는 자는 이상하리만큼 운도 따라주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실은 운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으로 일궈낸
분명한 실력이다.
어제 운 좋게도 밤하늘에 달과 화성, 금성이 직렬로 늘어서는 광경을
이 곳 쿠웨이트에서도 볼 수 있었다.
밤하늘에 수많은 별보다 더 밝게 빛나는 금성을 보며,
수많은 [별]들 중 하나가 되기보다는,
그보다 더 빛나는 [금성],
나아가 그보다 더 빛나는 [달]이 언젠가는 반드시 될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가져보는 것을 시작으로,
우리 모두가 가장 빛나는 각자의 2017년도를 보낼 수 있기를
작게나마 소망한다.
Min 작가님의 더 많은 글 보러 바로 가기.
쿠웨이트에도 스산한 겨울이 찾아왔다.
난방이 안 되는 집에서 지낸 이유로 생긴 감기 기운 탓인지,
아니면 해가 바뀐 이유에서인지,
혹은 마침 구정 같은 민족대 명절날에도
한국에서 가족들과 함께 있을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는지,
예년과 사뭇 다르게 다소 가라앉은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했다.
이곳에 온지도 2년 차에 접어들었다.
힘들었던 당시의 매 순간마다 시간이 너무나 더디게 흐르는 것 같이 느껴졌음이 분명한데
이제와 새삼스럽게 돌이켜보면 1년이라는 시간은 이미 훌쩍 흘러가 있구나.
지난 한 해는, 즐거웠던 순간들보다 힘든 순간들이 많았고,
그로 인해 내게 더 많은 것이 남았던 한 해였음을 부정하지 않겠다.
처음 브런치에 문을 두드린 이유는,
나와 같은 여자 엔지니어들이, 혹은 남들과 다른 좀 더 새로운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들이
나의 글을 보면서 스스로 나아갈 방향을 찾고 도전을 하는데 주저하지 않도록
그들에게 색다른 방향을 제시해주는 GPS 정도의 도움이 되길 바랐다.
어찌 보면 아주 전형적인 틀에만 갇혀 살아온 나도 할 수 있는 것을,
당신들도 못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라는,
어쩌면 희망 내지는 용기를 일깨워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혹자는 내게 독하다 말한다.
그 말이 썩 좋은 표현은 아닌 것을 알지만,
나는 그 말에 어느 정도 인정을 한다.
독한 사람은 절대 포기가 없다.
독하다는 것은 그만큼 주어진 업무에 대해 끈기 있게 마무리를 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업무적으로 볼 때 상사의 신뢰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 끈기 자체는 칭찬받아야 맞다.
그리고, 이제는 스스로도 그 말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내가 해낸 것들을 해내지 못한 다른 핑계의 일환으로 나오는 일종의 부러움이라 여기고 만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10배 잘나면 그를 헐뜯고,
100배가 되면 두려워하며,
1000배가 되면 고용당하고,
10000배가 되면 그의 노예가 된다.
- 사마천의 사기 화식열전 중에서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남자아이처럼 자랐다.
나는 2녀 중 차녀였기에 당시 나의 부모님은 내가 아들이기를 바라셨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기억하는 어렸을 때 나의 모습은 온통,
짧은 커트머리에 멜빵바지, 늘 남자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그 탓에 나 스스로도 가족 내에서 아들 역할을 대신해내야겠다는
의무 아닌 의무감이 늘 마음 한켠에 있었던 거 같다.
진학을 할 때에도, 나는 별다른 고민 없이 공대를 선택했고,
부모님의 기대에 발맞추기 위해, 첫 직장 역시 남들이 모두 입사를 갈망하는 삼성으로 입사했었다.
당시엔, 나의 생각과 결정보다는 남들이 맞다는 것, 남들의 선택을 좇으려 했던 거 같다.
결국 나 자신보다는, 남들의 선택을 더 믿고 신뢰해왔다.
그때의 나는 나 스스로를 믿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던 거 같다.
그럭저럭 별다른 노력 없이, 별 탈없이 순조롭게 나의 커리어의 첫 페이지를 써나 갈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기가 막히게 맞아 들었던 나의 운과 타이밍의 하모니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생은, 늘 운과 타이밍이 내 맘대로 되어 주지 않기에
어느 순간 실패의 순간이 반드시 찾아오게 된다.
별다른 노력 없이 무난하게 살아왔기에,
스스로도 실패 혹은 난관이라는 것을 겪어 보지 못했기에
처음 닥치는 난관을 마주할 때 비로소, 인생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님을 새삼 깨닫고,
지금까지의 최선을 다해 살아오지 않은 것에 대해 스스로 후회하고 순간이 찾아온다.
그러한 난관에 부딪혀보고 나서야 비로소, 스스로를 믿기 시작한다
아니, 스스로를 믿을 수밖에 없게 되는 순간이 온다.
스스로 믿고 내리는 그 결정이 그것이 희망에 부푼 소망뿐일 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절실해지고, 간절해지며
그때 처음, 스스로의 가능성을 절실히 믿기 시작한다.
내가 믿는 나의 잠재력, 나의 가능성이 얼마나 많은 것을 내재하고 있는지,
믿음이라는 뿌리가 주는 그 견고함이 수많은 난관 속에서 나로 하여금 어떻게 지탱하게 만드는지
나는 지난 1년의 경험 속에서 그것을 체감했다.
스스로 믿음이 쌓이는 순간,
두려움은 이내 가능성, 잠재력으로 바뀌고
더 이상 나는 못할 것이 없어진다.
외국인과 영어로 말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면,
오늘 당장 길 가다 우연히 만난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하는 것을 시작으로 "시도"해보자.
그것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다 보면 오늘보다 내일, 내일보다 그다음 날,
불편했던 처음의 마음, 두려움 자체가 나도 모르는 사이 어느 순간 놀라우리만큼 걷혀 있을 것이다.
이제껏 남들 앞에 서는 것이 두려웠다면,
두렵다고 마냥 피하지 말고, 지금 당장 가까운 친구들 앞에서 서는 것을 시작으로 "시도"해보라.
처음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을 만큼 창피하게 느껴졌던 마음도,
지속적으로 남들 앞에 나서다 보면 이내 편안해지고 자신감이 붙을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내게 주어진 업무 중 가장 두려웠던 일이 남들 앞에서 영어로 프레젠테이션 하는 것이었다면,
그것을 꾸준히 그리고 반복적으로 연습하고 빈번하게 남들 앞에 나서다 보니,
아주 뛰어나다고는 말할 수 없어도 내 안에 머물었던 긴장감, 두려움은 어느 순간 사라지고,
스스로도 말하는 것에 자신감이 생겨 여러 사람 앞에서도 떨지 않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내가 보였다.
무엇이든 처음엔 잘하든 못하든 "하는 것", 그 시도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좋다.
늘 처음 발을 내딛는 것이 힘들 뿐, 반복하다 보면 습관이 되고,
그렇게나 두려웠던 것들도 이내 아무것도 아닌 것, 별것도 아닌 것이 된다.
스스로를 믿고 무엇이든 시도하는 자는 이상하리만큼 운도 따라주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실은 운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으로 일궈낸
분명한 실력이다.
어제 운 좋게도 밤하늘에 달과 화성, 금성이 직렬로 늘어서는 광경을
이 곳 쿠웨이트에서도 볼 수 있었다.
밤하늘에 수많은 별보다 더 밝게 빛나는 금성을 보며,
수많은 [별]들 중 하나가 되기보다는,
그보다 더 빛나는 [금성],
나아가 그보다 더 빛나는 [달]이 언젠가는 반드시 될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가져보는 것을 시작으로,
우리 모두가 가장 빛나는 각자의 2017년도를 보낼 수 있기를
작게나마 소망한다.
Min 작가님의 더 많은 글 보러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