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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든 해외든 길을 지나가는 누군가에게
한국의 최고의 기업이 어디냐 물어보면
적어도 8할은 삼성이라는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초일류 기업 삼성이라는 브랜드에 이끌려
대학생 때엔 나도 삼성의 일원이기를 희망했었고
그리고 운 좋게도 졸업과 동시에 삼성에 입사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지난 9년여간의 시간 동안 내가 뿌리를 내린 이곳에서 회사의 최고 전성기,
그 최근 몇 년 새 잘나가던 회사의 위상이 바닥으로 급락하면서
비상경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지금의 모습까지
함께 희로애락을 겪어오면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버린 이 회사와
가족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동고동락한 동료들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
내게 결코 쉽지만은 않은 결정이었다.


플랜트 산업은 고객사의 필요에 의해 석유, 페트로케미컬 (Petrochemical) 및 비료를 생산하는 공장을
“설계부터 조달 및 공사”까지 완료하여 고객사에 제공하는 산업으로
즉, 고객의 니즈가 있을 때만 가능한 “수주산업”이기 때문에
업 특성상 사우디 아라비아, 아랍에미레이트 (UAE) 등의 중동 고객사들이 많으며 
플랜트 현장의 위치가 대부분 IS 테러의 우범지역에 위치하고
아무래도 플랜트의 공정이 워낙 위험 물질을 다루다 보니
환경적으로나 상황적으로, 대개는 여성보다는 남성적인 업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나는 프로젝트 수행 시, 공정 안전 (Process Safety) 분야의 리드 엔지니어 (Lead Engineer)를 맡곤 했다.
여자 엔지니어로서 이 업에 뛰어든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나의 경험을 들자면
사우디 프로젝트를 다수 수행할 때, 사업주들이 간혹 여성을 향한 조롱, 그 한 예로 
프로젝트에서 요구하는 문서 중 “Building Risk Assessment (BRA – 비. 알. 에이)”라는 문서가 있는데 
사업주가 이를 의도적으로 “브라”라고 언급한다든지 하는 식의 불쾌했던 경험이 있다.
그러나 고객사라서, 혹은 문화적 갭을 고려하면 제대로 컴플레인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나는 프로젝트 업무에 충실했고, 성실했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자 했다.
만약, 회사에 충성하는 일개미들의 노력에 대해 최소한의 인정 혹은 보상이 있었다면
아마도 쿠웨이트에 올 일도, 지금의 도전도,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아마 적절한 보상에 취해 지금의 도전을 엄두조차 내지 않고 있었을 것이 뻔하다.


회사 내 임원진 구성만 봐도 여성 임원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이 업계와 이 회사에서 여성으로 성장하기가 얼마나 일하기 힘든가를 반증해주었고
여성으로서는 분명 보이지 않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나는 결국 인정해야만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인정이 결국 내겐 전화위복이 되었다.
이 세상의 악은 사람이 물살의 흐름처럼 선으로 향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존재한다고 했던가.
결국 역경과 고난이 있기 때문에 발전이 있고 좋은 길로 향할 수 있는 역량이 생긴다.
겉으로 강해질 수 있었고, 안으로 단단해질 수 있었던 그 기회를 준 삼성에 지금 와 되려 고맙다.


퇴사를 결심하고 나서 인사 면담을 했을 때, 남은 후배들을 위해 삼성에 바라는 점을 물어왔다.
어찌 되었든 삼성은 지속적인 피드백을 통해
삼성 내 문화를 지속적으로 개선시키고자 하는 그런 회사임에는 확실했다.


내게 삼성은 그런 존재다.
아직도 삼성이라는 두 글자만 보아도 가슴이 뛰는 걸 보면
이제 더 이상 나의 일터가 아니지만 내가 뿌리를 처음 내린 곳이기에 친정 같고,
구 삼성인이라는 사실이 여전히 자랑스럽다.


삼성을 떠났지만 내게 그것이 마침표가 아니다.
살면서 쿠웨이트라는 중동 아랍국가에 살게 될 꺼라 한 번도 상상 못 한 나이다.
인생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음을 이제는 너무 잘 알기에
삼성과는 어쩌면 업무적으로도 언제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관계이기에
마침표 보단 쉼표로,
그렇게 나름의 방식대로 삼성과의 인연을 꾸준히 지속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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