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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출발한다고 해서 당연히 취직할 줄 알았는데, 이 나이에 다시 아르바이트라니. 아빠는 밥 먹다 말고 기겁하셨다. 

 

이제는 취업할 줄 알았는데, 다시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이 말은 우리 아빠가 나에게 하신 말씀이었다. 며칠 전, 이제 1년 동안의 백수 생활을 끝내겠다 마음먹고 부모님에게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 것인지 비장하게 말씀드린 적이 있었다. 그 말에 첫 문장은 이러했다. “저 취업 안 해요. 아르바이트할 거예요.” 내 말에 아빠는 황당해하셨다. 

 

아빠가 생각하시길 내가 잠시 쉬고 난 뒤에는 바로 취업 준비를 할 거라고 예상하셨던 것 같다. 그럴 만도 했다. 부모님이라면 당연히 자식이 아르바이트보다는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길 원하실 테고, 거기다가 내 나이 역시 어느새 아르바이트보단 슬슬 취업을 더 가까이해야 될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대충 예상하셨는지 아무 말씀도 안 하셨지만, 아빠와는 평소에 이런 이야기를 자주 안 했던 터라 조금 놀라신 듯 보였다. 나는 그동안 내가 생각한 것들을 다 정리하고 계획 세웠다고 해서 모든 게 다 끝난 것이 아니었다. 부모님을 설득시켜야 했다. 나는 그 날 아빠에게 내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아빠, 저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회사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 그건 저와 맞지 않는 일이라 분명 들어가면 또 얼마 안 되어서 나올 거예요. 그리고 지금 저에게 중요한 건 취업이 아니에요. “

 

내 말을 들은 아빠가 한숨을 내쉬며 말씀하셨다. 

 

“자기에게 100% 맞는 직업이란 없어. 조금은 하기 싫은 것도 감수하면서 살아야지. 사는 건 다 그런 거야.”

 

예상한 답변이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었고 아빠의 말이 아예 틀린 말도 아니었다. 단지 나와 가치관이 다를 뿐이었다. 내가 지난 1년 동안 백수로 지내면서 나는 나에 대해 끊임없이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뭘 좋아하고 관심 있는지부터 차근차근 파고들었다. 

 

그리고 내가 깨달은 딱 두 가지가 있었다. 한 가지는 내가 글을 쓸 때 가장 살아 있다고 느낀다는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내가 다른 사람의 고민을 들어주고 그 사람에게 뭔가 힘이 됐을 때 느낄 수 있는 행복과 따뜻함이었다. 

 

나는 사람의 심리와 상담에 대해서 더 공부하고 싶었다. 그래서 부모님에게 따로 공부하면서 관련된 자격증도 따고 글도 계속 쓰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데 취업을 하게 되면 회사에 묶여 있는 시간이 많을 테고 그러다 보면 공부도, 글도 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할게 뻔했다. 

 

그래서 나는 취업 대신 비교적 시간이 짧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당장 돈은 많이 못 모으더라도 자격증 공부할 때 쓰이는 비용과 자신의 용돈 정도는 벌어갈 수 있으니까 그거면 됐다고 생각했다. 뒤이어 아빠에게 내년이면 아르바이트 시급도 조금 오른다고 우스개 소리도 붙였다.   

 

아빠는 현실적이신 분이셨다. 다시 무언가 공부를 하고 그래서 자격증 시험을 본다는 건 말만 쉽지 절대로 녹록지 않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거기다가 아르바이트를 하면 내가 지금 당장은 어떻게 버틸 수 있겠지만 승진을 한다든가, 미래에 보장된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아빠는 이제 그만 이 치열하고 무서운 현실 속에서 얼른 내가 자리 잡기를 바라셨다. 

 

그리고 한 가지만 해도 성공할까 말까인데 한 번에 아르바이트도 하고, 공부도 하고, 글까지 쓴다는 게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나에게 물으셨다. 나도 그 부분에서 많은 고민이 들었다. 한 마디로 저질 체력인 내가 과연 버틸 수 있을까, 너무 큰 욕심을 낸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럼 그 세 개 중에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데, 냉정하게 생각해 봤을 때 아르바이트는 당장 금전적인 문제라 포기할 수 없고, 글 쓰는 것과 자격증을 공부하는 것 중에 내가 꼭 포기를 해야 한다면 과연 무엇을 포기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답을 낼 수 없었다.

 

오히려 그 속에서 나는 내 자신에게 미안해지는 감정만 들었다. 어찌 되었든 아직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생각부터 한 게 되어버렸으니까 말이다. 사실은 깨끗하게 포기할 수도 없으면서 막상 무작정 해볼 용기도 내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미안하고, 내가 그만큼 많이 나약하다는 사실에 더 힘들었다. 

 

나는 아빠에게 “열심히 부딪쳐봐야죠.”라고 대답했다. 어쩌면 이 대답이 정말 정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확실한 정답은, 백 마디에 그럴싸한 말보다 앞으로 내가 보여주는 나의 행동에 달린 일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말 한마디 한 마디에 나의 책임감이 따라붙었다.    

아빠는 많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마치 내가 1년 전에 끊임없이 두려워하고 고민했던 것처럼, 아빠도 지금 내가 고민하던 그 자리에 서서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계신 것 같았다. 

 

아빠는 긴 고민 끝에 결국 내 의견을 존중해주셨다. 누굴 닮아서 이렇게 고집이 세냐고 욕도 먹었지만 그 또한 아빠의 허락 멘트란 걸 나는 알았다. 나는 아빠에게 약속했다.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내가 하고 싶은 거 꿋꿋이 다 하면서 절대 힘들다고 쉽게 포기하지 않겠다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원하는 성과가 나에게 잘 다가오지 않는 대도 나중에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아빠는 고개를 끄덕여주셨다. 

  

부모님은 나에게 ‘하고 싶은 건 하나도 포기가 안 되는 아이’라고 표현하셨다. 그 말이 욕인지 칭찬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나는 그 말이 이상하게도 꼭 욕으로만 들리지는 않았다. 조금은 구제불능 일지 몰라도, 나는 그 말을 오래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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