Χ

추천 검색어

최근 검색어

잠시 바쁘지 않은 20대로 살아봤다. 두려웠지만 나에겐 필요했다.

 

요즘엔 스펙 쌓으랴, 토익 시험 보랴, 아르바이트하랴,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만큼 바쁜 20대를 보내고 있는 청춘들이 많다. 나 역시 남들에게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리고 어디 가서 밥이라도 제대로 벌어먹고 살려면 열심히 나만의 무기를 개발하여야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하던 일을 그만둔 채 백수생활을 자초했고, 1년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철저하게 바쁘지 않은 하루를 보내겠다고 마음먹었다.

 

백수의 일상은 사실상 몸은 편할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많은 스트레스가 있었다. 일단 부모님과 함께 살면 눈치가 보인다. 부모님은 최대한 자식에게 눈치 주지 않으시려고 “편하게 쉬어라”라고 말씀하셨지만 정작 집에서 쉬고 있는 나의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어딘가 모르게 죄송스러웠다. 

 

거기다가 집에 부모님 친구분들이라도 놀러 오시는 날이면 정말이지 내 방 밖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고 싶지 않았다. 평일에, 그것도 낮 1시 정도에 집에 젊은 친구가 있으면 모두들 말은 안 해도 ‘이 친구는 왜 이 시간에 아직도 집에 있지? 학교 안 가나? 회사 안 가나?’ 그렇게 암묵적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시선을 느끼면서도 꿋꿋이 백수생활을 이어나갔다. 마음속으로 ‘이렇게 집에 있어도 불편 할바엔 그냥 차라리 나가서 돈 버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도 했지만, 이제 어쩌면 정말 나는 죽을 때까지 돈을 벌며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지금이라도 이런 1년간의 백수생활을 나에게 꼭 선물로 주고 싶었다. 

 

그리고 한 번쯤은 살면서 느껴보고 싶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나에게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기는 할는지. 

 

친구들은 조금씩 취업을 하고, 연애를 하고, 스펙을 쌓고, 인맥을 만드는 동안 나는 집에서 못 본 영화를 몰아봤다. 잠을 엄청 잤고 그동안 책들을 조금씩 읽었다. 가만히 앉아서 멍 때리게 오로지 내가 하는 일이었는데, 그러다가 좋은 이야기가 생각나면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썼다. 날이 좋으면 혼자 동네를 산책했고 비가 오면 빗소리를 들으며 간식을 먹었다. 

 

바쁜 지옥철을 탈 일도 없었고 매사가 찡그리는 부장님의 얼굴을 볼 이유도 없었다. 돈은 없었지만 혼자만의 시간이 있었고, 불안했지만 나의 먼 미래를 상상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냥 정말 집에서 잘 쉬기만 했다. 어디 크게 여행을 다녀오지도 않았지만 일 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은 단언컨대 내가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다. 

 

백수로 지내는 동안 몸이 근질근질할 때도 정말 많았다. 돈 벌 때는 막상 느끼지 못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래나 저래나 내가 건강하기 때문에 어딜 나가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건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사회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스펙 쌓느냐 지쳐서, 언제나 불평불만으로 가득했던 나의 바쁜 일상들이 그러한 작은 감사들까지 모두 빼앗아갔다면, 이제는 하나둘씩 다시 찾아오는 기분이 들었다.  

 

솔직히 바쁘지 않은 20대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질책받기 좋다. ‘젊었을 때는 사서도 고생한다는데 넌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느냐’, ‘왜 이렇게 뺀질거리고 게으르냐’ 어른들에게 욕도 많이 들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쉬고 싶어도 마음대로 편하게 쉬지도 못하고, 오히려 쉬고 있는 것 자체가 남들에게 뒤처질까 두려움을 느껴야 하고, 꼭 하루를 바쁘게 보내야지만 내가 잘 살고 있구나 생각해야 한다면 그게 과연 행복한 삶이 될 수 있을까. 이대로 무작정 가도 나, 괜찮은 걸까. 

 

나는 그동안 옆 차가 빨리 달려서 나도 지지 않기 위해 빨리 달리는 셈이었다. 하지만 조금씩 내가 살면서 느끼는 건 삶에 있어서 속도보다 목적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가고 싶은 목적지가 어딘지 정확히 알고 가느냐’ 그것에 대해 다시 점검해 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가던 길을 멈추었다. 뒤차가 나를 추월해가는 걸 바라보는 건 언제나 무섭고 두려운 일이었지만, 조급해하지 않고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운전할 때 액셀을 밟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브레이크를 잘 밟는 일이었고, 브레이크를 밟고 잠시 멈춘다는 것은 장기간 더 운전해서 가야 하는 나에겐 꼭 필요한 일이었다.  

 

나는 미래에 정말 일도 잘하고, 쉬는 것도 잘 쉬는 어른이 되고 싶다. 길을 가다가 잠시 멈추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어른이었으면 좋겠다. 비로소 그렇게 될 때, 지난 1년간의 백수생활이 나에게는 왜 중요했고 왜 필요했는지를 남들에게도 증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은혜 작가님의 더 많은 글 '보러가기'



최근 콘텐츠


더보기

기업 탐색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