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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에 술이나 한 잔 하자는 친구의 말에 여자는 동네 포장마차로 향했다. 검은색 뾰족구두에 깔끔한 정장 차림, 하나로 높게 올려 묶은 여자의 머리가 친구를 만나기엔 불편했지만, 그렇다고 집에 가서 다시 옷을 갈아입고 나오기엔 귀찮았다. 여자는 속으로 ‘내가 면접 보러 다니는 거 모르는 것도 아닌데 뭐’라고 생각하며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포장마차 안에 들어가니 이미 와 있었던 친구가 여자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친구는 여자와 고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친구로 약 10년째 우정을 이어오고 있었다. 서로에 대한 찌질했던 과거사부터 화려했던 연애사까지, 그야 말로 모르는 게 없는 사이였다.

 

여자는 자리에 앉자마자 오늘 면접에서 있었던 어이없던 일에 대해서 토로했다.

 

“분명 신입을 뽑는다고 했단 말이지. 그런데 왜 면접에서 경력을 물어보냐고, 이게 말이 돼?”

“그러게. 거기 정말 기본이 안 되어 있다. 자기네들은 태어날 때부터 경력을 가지고 태어 난대? 그런 회사는 붙어도 별로야.”

 

역시 친구는 항상 여자의 편이었다. 그건 여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친구가 힘든 점을 여자 앞에서 털어놓았다.

 

“우리는 부장 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맨날 야근을 밥 먹듯이 시키질 않나, 삐치기는 또 얼마나 잘 삐치는데. 내가 무슨 7살짜리 아이랑 일하고 있는 기분이라니까.”

“요즘은 7살 아이들도 눈치가 얼마나 빠른데. 그냥 그 부장 놈은 배려라는 걸 새 똥만큼도 모르는 놈인 거야. 어후, 치사해.”

 

우리는 술잔을 부딪치며 서로 깔깔대고 웃었다. 술도 마시고 분위기도 더 좋아지자 친구가 안주를 더 시키자고 말했다. 그 사이에 소주 한 병도 추가했다. 여자는 다음 날 출근을 해야 하는 친구를 걱정했다. 그러자 친구는 다음 날 조금 늦게 출근해도 된다고 말했다. 내가 친구에게 물었다.   

 

“왜? 반 차라도 쓸 생각이야?”

“아니. 나 내일 본사에서 상 받거든. 그래서 본사에 10시까지만 가면 돼.”

“상? 무슨 상?”

“이번에 우리 팀에서 계획한 프로젝트가 목표 달성을 2배 이상 기록했거든. 그래서 나 잘하면 곧 승진할 수도 있어. 부장님이 말해줬는데 이번에 상도 받으면 나 팀장 자리로 올라갈 수 있을지도 모른대.”

 

그 순간 여자는 마시려던 술잔을 조용히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행복하단 듯 미소가 입가에서 떠나질 않는 친구를 바라보자 여자의 마음속에서 부러운 감정들이 휘몰아쳤다. 그건 여자를 괴롭게 만들었다. 단지 부러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취업도 못하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한탄으로까지 이어졌다. 여자는 이런 불편한 감정들을 친한 친구에게 느끼는 게 혼란스러웠다.

 

나의 라이벌도 아니고 평소에 싫어했던 친구는 더더욱 아니었다. 오히려 잘 되면 너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친구였는데, 막상 나보다 더 빨리 더 먼 곳을 향해 가고 있는 친구를 바라보자 여자는 마음이 힘들어졌다. 친구의 기쁜 소식을 들은 여자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러면 안 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여자는 애써 기뻐하며 친구에게 말했다.

 

“축하해. 나도 기쁘다. 네가 잘 돼서.”

 

‘사실 거짓말이야. 미안해.’

여자는 이런 자신의 못된 속마음을 친구가 듣는다면 얼마나 배신감을 느껴할까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는 사실 또한 부정하고 싶었다.

 

여자는 그날 집으로 돌아와 심란한 마음으로 침대에 누웠다. 아무래도 친구에게 그런 마음을 가진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여자는 생각했다. ‘술을 먹어서 그런 걸 거야. 내가 그 정도로 나쁜 사람은 아니야. 친한 친구를 질투할 만큼은 아닐 거야.’ 여자는 두 눈을 꼭 감았다.

 

그때 여자의 방문을 열고 들어온 건 엄마였다. 엄마는 여자가 집으로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자다가 막 깨어난 것 같았다. 부스스한 머리로 엄마는 여자에게 말했다.

 

“오늘 면접은 어땠어?”

“엄마 내 친구 팀장으로 곧 승진할지도 모른대. 나는 언제 취업할지 모르는데.”

 

엄마가 내 침대에 걸터앉는 것이 느껴졌다. 여자는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고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보통 사촌이 땅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하잖아. 난 그걸 보고 얼마나 속이 좁으면 그 정도밖에 생각하지 못할까 싶었는데. 내가 딱 그래. 엄마, 나 왜 이렇게 치사해졌지? 하나도 축하해 주고 싶지 않아. 배 아파.”

 

여자는 엄마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엄마를 쳐다보지 않았다. 취준생은 가끔 엄마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는 것도 힘이 든다. 하루 종일 구두를 신어 퉁퉁 부은 여자의 다리를 엄마가 조용히 주물러주며 말했다.

 

“네가 잘못된 게 아니야. 친구라고, 가족이라고, 마냥 박수만 쳐줄 수 있는 사람은 없어.”

“그래도 창피해. 나는 안 그럴 줄 알았어.”

“그래서 네가 틈틈이 행복해야 되는 거야.”

 

엄마는 말했다.

 

“남들이 기쁠 때 언제든지 같이 박수 쳐 줄 수 있으려면 너부터 틈틈이 행복을 챙겨 둬야 해. 그게 없이는 그 누구도 온전하게 기뻐해 주지 못할 거야. 엄마 말 잊지 마. 너가 그래서 행복해야 하는 거야.”

 

여자는 두 눈을 감으며 엄마의 말을 계속 생각했다. 그러니까 너도, 너도 틈틈이 행복해야 돼. 그래. 나도 틈틈히 행복해야 돼. 꼭, 나도 틈틈이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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