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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 XX는 이번에 공기업 들어갔다더라. 지방대 갔다더니, 거기서 공부를 잘했나봐?”
“걔 알지, 한 학번 아래 후배 XX. 걔는 이번에 대기업 입사했대”
“내 친구 XX는 이번에 S사랑 H사 둘 다 합격해서 어디 갈지 고민중이라던데”


취업시장이 아무리 어렵다 한들, 주변에는 ‘어려운 조건에도 불구하고’ 좋은 회사에 취업 성공한 합격자들이 분명이 있다. 대입시절, S대 진학에 성공한 ‘엄친아’가 취업시절이 되니 S사 입사에 성공한 ‘엄친아’로 돌아온 것이다. 우리 사회가 워낙 불굴의 투지로 이뤄낸 성공신화를 좋아하는지라, 상황이 열악해질수록 소수의 성공자들에 대한 열망과 존경은 비약적으로 커진다.


다 같이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 척박한 환경 속에서 성공을 일군 주역들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을 감화하기에 충분한 소재였을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 너도나도 희망을 품고 일을 했기 때문에 지금처럼 우리 사회가 잘 살게 된 것이다. 그 시절과 현재의 다른 점을 감히 지적해보자면, 현재의 청년들에게는 나도 잘 될 수 있으리란 희망이 더 이상 없다는 점이다.


나라가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 시절의 ‘엄친아’는 희망의 근거였겠지만, 지금처럼 저성장의 굴곡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시절의 ‘엄친아’는 질투와 냉소의 대상이 되기 쉽다.


나는 그다지 마음이 넓지 않아서, 누가 좋은 곳에 취업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배가 아프다. 자격지심이 심해져서 그 사람과는 마주치기도 싫어진다. 취업에 성공한 친구가 있는 자리에는 왠지 가기 꺼려진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온 진심을 다해서 축하해주는 것이 쉽지 않다.


취업한 친구는 그저 간절한 마음으로 취업준비를 해서 좋은 결과를 얻었을 뿐인데, 자격지심에 찌든 나는 친구를 왜곡해서 보기 시작한다. 혐오스럽다.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열악한 환경을 딛고서 좋은 기업에 취업한 사람들에게 엄청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다 보니,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수많은 청년들은 더욱 더 음지로 숨어든다. 그렇게 음지로 숨어든 청년들은 나처럼 취업에 성공한 사람들을 질투하고 냉소하면서 마음을 달래거나 혹은 언젠가 받을 스포트라이트를 위해 묵묵히 공부한다.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하고 쉽게 휘둘리는 찌질한 나도 문제지만, 성공에 대한 기형적인 집착과 환호를 보이는 문화 역시 문제라고 생각한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데, 나는 입시부터 취업까지 굵직한 사건들을 겪을 때마다 기쁨을 배로 만드는 법은 배웠지만 슬픔을 반으로 만드는 법은 배우지 못한 것 같다.


성공만큼 실패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풍토라면, 많은 사람들이 성공한 주변인들과 자신을 비교해가며 자격지심에 힘들어 하는 일도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성공한 사람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만큼 실패한 사람에게도 뜨거운 박수가 쏟아진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해보고자 힘을 내는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을까. 실패를 숨기고 음지로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실패에 대해서도 호탕하고 가볍게 이야기하고 나눌 수 있는 시대가 왔으면 싶다.


그런 의미에서 저 이번에 실패했습니다, 그래도 다시 해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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