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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 스스로에 대해서 크게 실망하는 경우가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남의 의견을 피곤해할 때'이다.

 

나도 내 의견이 무시당했을 때의 그 불쾌한 감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상대방 의견을 이해해주고 싶지만 마음처럼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비록 동의하지 않는 의견이라 하더라도 이해하고 수용하는 태도야말로 대화와 소통의 기본이라고 하지만 나와 전혀 반대되는 생각을 갖고 있는 상대와 대화할 때면 일단 내가 느끼는 감정은 '피곤'이다.

 

지금보다 더 어리고, 내 주관이 상대적으로 약했던 시절에는 나와 극단적으로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의 의견에 대해 흥미있어하고 신기해했었다. 반대의견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내 의견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과정을 통해 좀 더 성장하는 것 같아서 나름 재미있기도 했다.

 

그러나 요새는 내 상식과 다른 의견에 대해서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반면, 나와 비슷한 의견에 대해서는 박수치며 동조하는 경우가 점점 더 빈번해지고 있다. 그게 훨씬 속 편하다. 듣고 싶은 의견만 듣고, 듣기 싫은 의견에 대해서는 귀 닫는 것.

 

더 나쁜 건, 이렇게 듣고 싶은 의견만 계속 들으면서 내 주장을 합리화한다는 것이다.

 

내가 정말 대화하기 싫어하는 부류가 책을 많이 읽고, 경험이 많다는 것을 앞세워 자기 의견을 맹신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주로 자기 의견을 뒷받침해줄 만한 사례들만 취사선택해서 보고 듣는다. 그리고는 마치 자기 의견이 여러 책과 강연을 통해서도 공증된 의견인 양 합리화한 후, 주변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기 시작한다. 반대논리를 펴는 사람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설득시키려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들과 대화하기 피곤해한다는 것은 나 역시 이런 부류에 속해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나는 내가 평소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 여겼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나는 생각하기를 포기한 사람이었다. 내게 편하고 익숙한 생각만을 재생산하고 강화하는 건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형편없고 듣기 싫은 주장이라고 하나둘씩 회피하기 시작한다면, 우물 쌓고 그 안에 제 발로 들어가는 개구리 꼴인 셈이다.

 

나와 다른 의견에 대해 억지로 관대한 척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런 의견에 대해서도 한 번쯤은 시간을 들여 생각해보는 것이 상대와의 갈등을 줄여준다는 점에서도, 자기 생각의 폭을 넓힌다는 점에서도 장기적으로 스스로에게 유리한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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