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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는 판매하는 제품과 방식에 따라 상당히 다른 양상을 띤다. 난 지금까지 화학 제품, 소비재, 그리고 공장 설비를 판매해 보았고, 취급해 본 제품의 가격은 30 원부터 40억 원까지 다양하다. 화학 제품을 파는 방식과 소비재 제품을 파는 방식은 상이하며, 30원짜리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과 40억 원짜리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또한 세일즈를 직접 하느냐, 대리점을 통해 하느냐에 따라 다르고, 판매하는 대상이 기업이냐 개인이냐에 따라서도 다르다. 하지만, 세일즈의 기본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그 기본을 보여주는 일화를 하나 소개할까 한다.

 

T사 영업 담당자로서 나는 고객사 공장 생산팀이나 구매팀을 만나 설비를 설명하고 가격을 협상하기도 하지만, 고객사 영업팀과 마케팅팀에게 시장 상황이나 트렌드를 전달하고, 우리 회사 설비를 사용해서 성공한 사례를 공유하면서 고객사가 성장할 기회를 같이 찾아주는 파트너로서 활동하고 있다. 나는 고객사의 성장 파트너가 되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하여 활동하고 있다.

 

B 사는 우리 회사 설비를 수출용 제품인 N 제품에 활용하고 있는 고객사다. 우리 회사 내부적으로 B 사 설비를 업그레이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기로 하였고, N 제품의 해외 영업을 담당하는 H 부장을 만나게 되었다. 첫 만남에서 H 부장은 본인이 B 사에서 이 프로젝트를 추진할 리더임을 자임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래서 두 번째 만남에는 우리 회사 마케팅 담당과 함께 설비를 업그레이드하면서 30% 이상 성장한 해외 고객사 사례와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요소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이 미팅에서 H 부장은 설비 업그레이드를 통해 생산된 제품에 대한 B 사 해외 유통 업체 의견을 조사해 보고 싶다고 했다. 이런 H 부장의 생각이 매우 긍정적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본인이 확신이 있다면 해외 유통 업체는 설득할 일이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H 부장은 관심은 있으나, 설비 업그레이드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자세를 취했다고 봐야 한다. 다행히 10여 개 해외 유통 업체 반응은 좋았다. H 부장은 해외 바이어 반응과 우리 회사가 제공한 자료를 묶어 B사 대표에게 보고하였다. 이 정도면 이 프로젝트 진행에 있어 1단계 성공으로 판단할 수 있다. 우리 제안을 고객사 프로젝트 리더가 받아들여 액션을 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H 부장의 보고에도 불구하고 B 사 대표는 바이어 반응만 조사할 것이 아니라 소비자 반응까지 조사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더욱 조심스러운 의견을 내놓았다. 이렇게 물러설 수 없어 우리는 소비자 반응 조사 비용을 지원할 터이니 진행을 해보자고 H 부장을 설득하면서, 소비자 반응 조사 장소, 조사 인원, 조사 예산, 조사 설문 문구 등을 공동으로 설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중국과의 외교분쟁인 ‘사드’ 사태가 터졌다. B사 해외 최대 수출 시장인 중국에서 반한 감정이 고조에 달했고 H사 수출 물량은 30% 이상 빠졌다. 소비자 반응 조사를 할 수 없는 건 너무 당연했다. 이 프로젝트를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예상치 못한 난초를 만난 셈이다.

 

고민 끝에 난 일단 물러서기로 했다. 우리 회사 내부적으로도 실적 압박이 있어 프로젝트를 미룰 상황은 아니었지만,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H 부장에게는 추락하는 매출을 최소화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에게 설비 업그레이드는 다음 문제다. 따라서 밀어붙여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후 1달 정도 지났을까, 매출 때문에 속이 상해 얼굴색이 좋지 않을 H 부장을 위로하기 위해 찾아갔다. 점심을 같이하면서 건강은 어떤지, 시장 상황이 어떤지, 어떤 계획 가졌는지 물었고, 우리 회사도 B 사에 대해 많이 걱정하고 있으니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이야기해 달라 하였다. 헤어지면서 H 부장은 “김 부장님 오시니까 압박은 받네요”라면서 웃길래, “그러지 않으셔도 되고요, 조금 지연되는 거로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 이때만 해도 최소 한두 달은 더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열흘 정도 지났을까, ‘지금 상황에서 일반 소비자 조사는 어렵네요. 다만, 저희 회사 마케팅 업무를 대행하는 중국 현지 업체에 중국인이 100여 명 근무하니, 반한 감정은 여전하지만 그분들을 상대로는 소비자 반응 조사가 가능합니다. 그 조사 결과를 취합해서 사장님께 다시 보고하려 합니다.’라고 H 부장이 전화를 주었다. 급반전인 셈인데, 사드 사태가 해결되기까지는 기다려 보자고 하거나 아무런 회신을 주지 않아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나서는 것이 심리적으로 부담이기 때문이다. H 부장은 소비자 반응 조사를 신속히 진행했고, 다행히 긍정적인 결과를 손에 쥐게 된 모양이었다. 대표 보고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나는 그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프로젝트를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이를 위해 애써준 H 부장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초대를 받는 H 부장은 “OO 월 OO 일 정도에 보시죠”라 회신해 주었다. 이 정도면 2단계 성공으로 판단할 수 있다. 난관이 존재함에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고객사 프로젝트 리더가 피력한 셈이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 마케팅 담당과 H 부장 그리고 그의 팀원과 함께한 저녁 식사 자리는 훈훈했다. 중국 상황은 더 나아지지는 않았으나 사드 사태 이후 감소한 물량보다 더 떨어지지는 않았고, 다른 나라 물량이 성장하고 있어 그런대로 버틸 만하다고 하였다. 이런 업무 이야기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이 했는데, 아이들 크는 이야기, 여행 이야기 등을 하였다. 업무적 관계로 만나더라도 개인사 공유하게 하면 분위기가 부드러워지고 친밀감이 생기기 마련이다. 대표 보고 결과는 저녁 식사가 끝나고 같이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서 들을 수 있었다. “대표님이 설비 업그레이드를 승인하셨습니다”라며 H 부장이 말을 꺼냈다. “프로젝트 결과가 좋게 나와서도 감사하지만, 특별히 지금까지 애써주신 부장님께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결과가 좋지 않았어도 마찬가지 마음이었을 거예요”라고 H 부장에게 이야기했고, 오히려 H 부장은 “사드 사태로 타격 입은 중국 시장에서 매출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될 거라 믿습니다. 오히려 제가 감사드립니다”라 화답하였다. 이렇게 최종 단계를 넘어섰다.

 

이렇게 긴, 1년간의 여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고객의 니즈가 있었다. N 제품 매출이 2~3년간 정체되어 있어 매출 성장을 위한 변화를 주고 싶었다.  더더군다나 사드 사태로 매출이 급감했으니 현지 유통 채널 전략이나 가격 전략에 변화를 줄 문제도 아니었다. 따라서 제품 자체에 변화를 주는 게 필요했던 것이다. 둘째, B사 프로젝트 리더인 H 부장과 나의 궁합이 잘 맞았다. 미팅을 거듭할수록 H 부장에게 필요한 것이 보였다. 수출 제품 인증 문제, 제품 납기 문제, 설비 업그레이드 기간 단축 문제 등 그가 도움을 필요로 했던 문제를 적절한 타이밍에 내가 해결해주었다. 마지막으로, 이런 과정 속에서 H 부장과 나 사이에 신뢰가 쌓였다는 것이 결정적이었다. 미팅을 거듭하며 서로가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만,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사드 사태로 괴로워했을 H 부장을 만나러 가 ‘언제라도 도움을 주겠다’고 이야기한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세일즈의 기본은 신뢰다. 제품에 대한 신뢰는 기본이며, 제품을 판매하는 영업 담당자로서 고객(사)에게 신뢰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어떤 제품을 팔던, 신뢰가 기본이 되어 있는 영업 담당자라면 언젠가는 빛을 보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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